[조성기의 反 금병매] (141) 1부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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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진문소는 이풍연이 명가(名家)들처럼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하는 구석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고 여겨져, 그동안 은밀히 작성해온 무대 사망에 관한 수사기록 일지를 들고 나왔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풍연이 두툼한 종이 두루마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바로 당신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문건이오. 이것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보탤 수도 있을 거요."

"수사기록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정식으로 재판을 해서 음탕한 년놈들을 처단해야지요."

"세상 일이 그렇게 원리 원칙대로만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요즈음 많이 느끼고 있소. 이것은 공식문서가 아니고 내가 장래 일을 대비하여 스스로 작성해본 것이오. 이 문건이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언제 세상에서 빛을 볼지 모르오. 그러나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는 얼마든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지 않소. 이것을 당신에게 드릴 테니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보시오. 그러다가 나중에는 종이에 써서 책으로도 만들 수 있겠지요."

"안 그래도 음란죄로 잡혀 왔는데 더 음탕한 이야기가 되면 어떡합니까?"

"음탕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음탕의 진상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음탕하다고 판단하면 곤란하지요. 나도 간음죄를 재판하면서 그 진상을 파헤칠 때는 헷갈리는 적이 있기도 하오."

"음탕하다고 판단하는 자들을 또 음탕하다고 판단하고, 그런 자들을 또 다시 음탕하다고 판단하고…. 악순환이군요. 하긴 음탕은 늪과 같아서 거기 빠지면 음탕한 자나 그것을 음탕하다고 판단하는 자나 다 허우적거리기는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판단하는 사람아, 핑계하지 말라.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하고 있구나.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하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하신 성현의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군요."

"그럼 같은 일을 행하지 않으면서 판단하면 판단할 자격이 있겠군요. 아무쪼록 이 문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보시오. 이것이 음탕한 그 남녀에게는 어떠한 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될지도 모르지요. 청하현에서 떠도는 소문이 거짓이 아닌 게 확실하니까 말이오. 역사를 통하여 두고두고 내려지는 심판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시대시대마다 음탕한 남녀들과 부패한 관리들을 심판하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진문소의 말을 듣더니 이풍연이 급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심판, 심판 하니까 어깨가 무겁군요. 사실 소설가들은 대개 심판 따위에는 관심이 별로 없지요. 비록 심판에 관심이 있는 소설가라 하더라도 그저 이야기를 구수하게 지어내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만 하고 판단은 청중이나 독자들이 하도록 해야겠지요. 글 구석구석이나 이야기 중간중간에 못된 사람들을 꾸짖어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설가들도 있지만, 소설가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요. 나도 그렇게 했다면 이렇게 잡혀오지는 않았을 거요."

"그런데 말이오, 음탕한 장면을 이야기할 때는 당신도 그 남녀들처럼 흥분이 되나요?"

진문소가 이풍연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풍연은 거기에 대해서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술잔을 들이켜기만 하였다.

"간음죄 같은 것을 재판하실 때는 어떠하신지요?"

오히려 이풍연이 진문소에게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진문소도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사람 마음에 관한 것은 반대로 이야기해도 진실입니다."

이풍연이 또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뇌까렸다.

"물지즉반(物至則反)이라는 말씀입니까?"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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