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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없이 쉽게 돈 벌려는 것 아냐" 성매매 여성 항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천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 골목.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33곳 업소 가운데 11곳이 영업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인천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 골목.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33곳 업소 가운데 11곳이 영업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지난 8일 오후 6시 인천 미추홀구 지하철 숭의역 출구 앞. 인적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외부 유리 전체에 노란 시트지를 붙인 건물이 드문드문 보였다. 각각 ‘○호’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이곳은 인천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다. 1962년 인천항 주변에서 이전해 조성된 이후 1~33호가 영업했지만 재개발 사업 추진으로 현재는 11개 업소만 문을 열고 있다.

[르포] #지자체 탈성매매 여성 자활지원금 논란 #대구·전주·아산·광주서 61명 지원 받아 #전문가 “성매매 금지주의 국가에서 필요”

지난해 6월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은 아파트·오피스텔 건설을 위해 이 지역의 철거를 예고했다. 보상을 받은 건물주 겸 업주들은 모두 떠났지만 30~60대 성매매 종사 여성 40~50명은 퇴거를 거부하며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골목 한쪽에 철거된 주택 자재가 보였다. ‘빨래 이모’‘현관 이모(호객 역할)’들이 살던 곳이다.

불 켜진 업장 홀에 여성 4명이 앉아 쉬고 있었다. 영업시간은 오후 8시부터 오전 5시. 성매매 종사 여성 A씨(50)는 “수십 년을 살면서 일한 터전인데 조합과 업주가 사전 예고 없이 이주비 한 푼 안 주고 나가라고 한다”며 “주변 포장마차·식당·세탁소·고물상 모두 같은 처지다. 건물주·업주·조합 누구도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8일 오후 7시 옐로하우스 골목. 일부 업소가 8시부터 시작하는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8일 오후 7시 옐로하우스 골목. 일부 업소가 8시부터 시작하는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조합은 보상금을 건물주에게 모두 지급했으며 성매매 종사 여성에 대한 보상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조합 관계자는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구청에서 나오는 자활지원금을 기다리며 안 나간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A씨는 “지원금 제도는 실효성 없는 탁상공론이고 조합 측의 보상을 원한다”며 “구청에서 지원금을 줄 거라고 홍보만 잔뜩 해 욕을 많이 먹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 미추홀구는 지난해 9월 ‘성매매 피해자의 자활 지원 조례 시행규칙’을 공포했다. 탈성매매를 조건으로 한 명당 1년씩 연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주거지원비 700만원과 생계비 월 100만원, 직업훈련비 월 30만원이 지원금에 포함된다. 인천 미추홀구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관련 구 예산이 9040만원 편성됐다.

지원은 탈성매매 여성이 신청하면 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뤄진다. 지원금을 받은 뒤 다시 성매매를 하면 지원금을 환수당한다.

저녁이 되자 문을 열기 위해 나온 포장마차 주인. 최은경 기자

저녁이 되자 문을 열기 위해 나온 포장마차 주인. 최은경 기자

이 시행규칙이 발표된 뒤 거센 반대 여론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꾸준히 반대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인은 “열심히 일하며 사는 사람을 돕진 못할망정 불법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성매매 종사 여성 B씨(35)는 “국민의 비난을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호프집 서빙, 편의점 알바 같은 다른 일도 해봤지만 월 10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가족 뒷바라지하고 생활비·병원비를 충당하다 보면 또 빚이 쌓이고 다시 이 일을 찾게 된다”고 토로했다.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지원 인원이 한정된 데다 신분 노출 걱정에 신청이 어렵다"면서 "구청이 지원 제도를 마련하면서 실태조사나 상담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국에서 대구·전주·아산·광주시가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대구시는 2017년 7월부터 성매매 종사 여성 110명 가운데 75명을 상담해 성매매를 그만둔 여성 43명을 지원하고 있다. 1인 연 최대 2000만원이다.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과 관계자는 “지원 단체가 현장을 찾아 여성들을 설득하고 신분 비밀 보장을 철저히 했다”며 “탈성매매를 하는 여성 모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7명은 보건의료·생산·안내서비스직에 취업했다.

다른 지역은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 전주시는 2017년 12월부터 60여 명 대상자 가운데 신청자 12명에게, 아산시는 같은 해 6월부터 80명 가운데 4명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집창촌 재개발이 이뤄지는 이들 지역과 다르게 광주시는 탈성매매 여성을 위한 시설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각 500만원씩 2명을 지원했다.

탈성매매 여성 자활지원금 논란을 잘 보여주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웹사이트 캡처]

탈성매매 여성 자활지원금 논란을 잘 보여주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웹사이트 캡처]

탈성매매 여성 자활지원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준연 대구 중구의회 의원은 “이 지원금 정책은 토지 개발에 방해되는 성매매 종사자를 처리하려는 성매매 사업자, 토지개발 사업자, 대구시 공무원의 농간으로 이뤄졌다”며 “여성들이 또다시 성매매를 안 한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여성 단체가 항의하자 대구시당은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홍 의원 징계 반대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많은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사회구조의 희생자로 보고 탈성매매 여성이 정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탈성매매 지원 프로그램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를 지는 것”이라며 “자활지원금이 적어 현실성이 부족하고 성구매자보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심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란 속에서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은 다음주 말쯤 옐로하우스의 빈 업장부터 철거를 시작할 계획이다.

인천=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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