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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18년차' 백만기 "은퇴는 좋아하는 일 찾는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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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톡톡 더,오래] 노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

나이 마흔이 됐을 때 직장생활을 딱 쉰까지만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10여년간 은퇴준비 후 50대 초반에 사표를 썼다. 은퇴 후에 기타도 치고 밴드도 만들어 보고 미술공부도 해봤다. 라디오 DJ, 미술관 도슨트, 객원기자, 호스피스,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등의 활동을 하며 현역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기도 했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어쩌다’ 책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게 됐다. [더,오래]에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를 연재 중인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얘기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68)은 은퇴 18년 차다. 그는 현재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AK플라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공간을 지원받아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재능기부 형태로 운영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친다. 서지명 기자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68)은 은퇴 18년 차다. 그는 현재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AK플라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공간을 지원받아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재능기부 형태로 운영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친다. 서지명 기자

1952년생인 백 씨는 올해로 68세다. 은퇴 18년 차다. 그는 현재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AK플라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공간을 지원받아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몇 살에, 왜 은퇴를 결심했는지
나이 마흔이 되던 해 언제까지 이렇게 직장에서 일만 하고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일단 나이 오십에 은퇴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은퇴준비를 시작했다. 은퇴 후의 할 일은 은퇴준비를 하며 떠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은퇴는 51세다. 은퇴는 마지못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은퇴를 직업을 바꾸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취미, 여가, 노는 것이 강조되는 시대다
노는 것에 대한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는 옛날부터 노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데만 익숙해 노는 데 부담을 갖는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놀 기회가 없기도 하다.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연차나 여름휴가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도 어려웠다. 특히 지금 40대 이상이라면 더 그렇다. 지금부터라도 배워야 한다.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곤란을 겪는 부분이 남는 시간이다. 특히 노는 법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은퇴 후 시간 관리에 관한 팁을 준다면
생명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일상에서 불필요한 일을 가급적 줄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의 리스트를 만든 후 우선순위에 따라 행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을 수 있다면 은퇴준비의 반은 끝난 것이다. 나머지 반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짜면 된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할 일은 참 많다. 이제부터라도 그 일을 찾아야 한다.
잘 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소한 걸 사소하게 보면 안 된다. 인생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T자형’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 들어 본 고전음악도 좀 들어 보고, 미술도 좀 보러 다니고, 악기도 배워 보며 폭넓게 관심을 갖고 조금씩 알아가야 한다. 그중에 한 가지는 자신만의 전문가적 소양을 쌓아보자. 그런 T자형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다.
백 교장이 아름다운인생학교 내 교실에 있는 드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지인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서지명 기자

백 교장이 아름다운인생학교 내 교실에 있는 드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지인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서지명 기자

[더,오래]에 어떤 글을 연재 중인가
작가는 유려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더,오래]에 ‘은퇴생활백서’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데 초기에는 ‘죽음’을 주제로 글을 썼다. 죽음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주제로 글을 얼마나 쓸 수 있겠나 싶었는데, 관련 책을 수십권 읽게 되고 관심을 두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다 보니 처음에 계획했던 10회를 훨씬 넘겨 연재할 수 있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몰입을 하면 몰랐던 새로운 분야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이 강조되고 주 52시간 등으로 여유시간이 많아진 직장인들 역시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 잘 모른다. 여가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바쁜 사람일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이 세 장을 앞에 놓고 첫 장에 과거 자신이 좋아했던 것의 목록을 작성한다.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모두 써본다. 그리고 다른 장에 현재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같은 요령으로 작성한다. 나머지 종이에 미래에 좋아할 만한 것을 작성한다. 세 가지 종이에서 중복되는 빈도가 높은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실천방안을 세운다.

어떤 계기로 아름다운인생학교를 만들게 됐나
은퇴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바가 없을까 찾아보다가 성남아트센터가 개관하며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응했다. 자원봉사를 지원한 사람들의 경력을 보니 기업체 임원, 번역가, 방송작가 등 직업이 다양했다. 이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이용하여 봉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부여된 일은 봉투에 풀을 붙이거나 서고를 정리하는 등 너무 단순한 일이었다. 이런 일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자들은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결국 많은 사람이 그만두었다.

저들을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영국에 U3A라는 시니어커뮤니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U3A는 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약자다. 즉 3기 인생을 사는 대학인 것이다. 우리 지역에도 꼭 필요한 기관이라고 생각해서 2013년 설립했다. 그리고 그만둔 자원봉사자들을 강사로 초빙했다.

어떻게 운영 중인가
인생학교 과정은 크게 인문학, 어학, 예술, 건강 분야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기가 많은 것은 심리학, 인문학 독서, 일본어다. 심리학반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아선지 수강하는 인원이 늘 만원이다. 최근 해외여행지 중 일본의 선호도가 제일 높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일어반도 인기다. 지금은 100여명의 학생이 이용하고 있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이미 은퇴한 50·60세대들이 대부분이다. 자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난 시니어들은 배우고자 하는 자기계발 욕구가 강하다. 한편 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주위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다. ‘내가 아는 것은 남에게 가르치고,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운다’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교육원리로 운영하고 있다.

[톡톡 더,오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계획인지
신은 우리에게 똑같은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이 선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존에 있는 사람에게는 직접 물어보고 이미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은 그들의 책이나 묘비명을 살펴보는 것이다.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르비트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먹고사는 일, 둘째 재미있는 일, 셋째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가 부족하면 그 사람의 생은 드라마가 된다고 했다.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삶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사례로 들려주고 싶다.

그는 오는 17일 열리는 [톡톡 더,오래]에서 ‘나이 마흔에 시작하는 은퇴공부’를 주제로 강연한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일보 [더,오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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