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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위 출신이 오히려 발목? 시험대 오른 허인 은행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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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8일 하루 경고성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은행 측은 노조의 파업에도 전국 1058곳 영업점의 문을 모두 열었다.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일부 지점에선 인력 부족으로 업무 처리에 지장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혼란은 없었다. 지점 고객 응대 창구에 ‘교육 중’ 명패가 올려진 채로 비어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은행이 지정한 전국 411곳의 거점점포에선 주택구입자금이나 전세자금 대출, 수출입ㆍ기업금융 업무 등 대부분의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송파구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9000여 명(노조 추산)의 조합원이 참여한 가운데 총파업 선포식을 열었다.

박홍배 노조 위원장은 “사용자측이 신입행원 페이밴드 등 부당한 차별은 뒤로 숨기고 오직 금융 노동자가 돈 때문에 파업을 일으킨 것처럼 호도하고 부당 노동행위로 조합원들을 겁박했다”고 주장했다. 이 은행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것은 2000년 국민ㆍ주택은행의 합병 반대 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확대 위기관리협의회를 열고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점검을 벌였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파업진행 및 영업상황, 고객불편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즉각 대응하고 금감원 현장상황반은 국민은행과 협조를 통해 비상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상황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이번 일로 허인 국민은행장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옛 장기신용은행에서 노조 위원장을 지냈던 허 행장은 시중은행 가운데 첫 노조 위원장 출신 은행장으로 2017년 11월 취임했다.

허인 국민은행장

허인 국민은행장

허 행장의 취임 이후 은행권 노조 가운데 ‘강성’으로 꼽히는 국민은행 노조와 관계가 부드러워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허 행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미래 지향적인 노사관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며 “우리는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고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노조의 생리를 잘 아는 허 행장이 노사 협상을 주도하지 못하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다녔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은행 측은 강하게 부인했다.

허 행장은 지난 7일에는 사내 방송을 통해 “최종적으로 보로금(특별 보너스)에 시간외 수당을 더한 300%를 제안했다”고 전 직원에게 알렸다. 노사간 핵심 쟁점이었던 ‘성과급 300% 지급’을 사실상 수용하면서 노조의 파업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임금피크제 등 조건이 달려 있다”는 이유로 허 행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은행 노사는 8일 새벽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양측의 입장차를 더이상 좁히지 못했다.

8일 오전 국민은행의 한 지점 창구 모습.

8일 오전 국민은행의 한 지점 창구 모습.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은 8일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니다. 노조는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의 이틀에 걸쳐 2차 파업도 예고했다. 자금수요가 몰리는 설 연휴(2월 2~6일)를 코앞에 둔 시기여서 만일 2차 파업이 현실화된다면 1차 때보다 고객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3월 말까지 5차에 걸친 파업과 정시출근ㆍ집단휴가 등 준법 투쟁도 예고하고 있다.

은행 경영진 54명은 지난 4일 노조의 파업으로 영업 차질이 발생하면 책임을 지겠다는 조건부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허 행장은 임원들의 사표 수리는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노사는 성과급 등 핵심 쟁점에서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뤘지만 임금피크제 등이 남은 쟁점으로 꼽힌다. 국민은행은 다른 은행들과 달리 임금피크제 진입 연령을 부장(지점장)급과 팀원급으로 구분한다. 부장급은 55세 생일이 지나면 바로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지만, 팀원급은다음해 1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노조는 임금피크제 진입 연령을 일률적으로 1년씩 늦추자는 입장이다. 사측은 이원화된 제도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부장급은 1년씩, 팀원급은 6개월씩 연장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입행원만을 대상으로 한 ‘페이밴드(직급별 호봉 상한제)’에 대해 사측은 당초 전 직급 확대를 주장했지만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선으로 절충안을 내놨다. 반면 노조는 페이밴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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