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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불화 있었나···김용 세계은행 총재 전격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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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 [AP=연합뉴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 [AP=연합뉴스]

한국계 미국인인 김용(59) 세계은행 총재가 이달말로 사임한다고 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총재는 이날 내부 통신망을 통해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사명에 헌신하는 열정적 사람들로 가득한 기관의 총재로 일한 것은 큰 영광이었다"며 "2월 1일 세계은행 총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임기 3년 5개월이나 남겨두고 사임 발표 #투자회사 합류 예정, 트럼프와 불화 소문도 #전날 이사회 갑작스레 소집, 전격 사퇴

김 총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도  “2월 1일 세계은행 총재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위대한 기관의 헌신적인 직원들을 이끌고 빈곤 없는 세상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특권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김 총재는 지난 2016년 9월 연임에 성공해 첫 임기가 끝나는 2017년 7월1일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한 상태였다. 임기를 3년 5개월이나 남겨 둔 상황에서 조기 사임하는 셈이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갑작스레 잡힌 이사회에서 이사들에게 사임 소식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예정에 없던 이사회가 소집됐다는 소식이 전날 저녁 전파되면서 이사들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25명 이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김 총재가 마이크를 잡고 곧바로 “세계은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는 것. 김총재는 소회를 밝힌 뒤 이사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눈 뒤 회의실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들 모두 김 총재의 조기사임과 관련해 사전 정보가 전혀 없던 상태여서 그 충격이 더했다고 한다.

김 총재의 조기 사임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은 또 있다. 이날 오후 김총재와 티미팅이 예정돼있던 국내 모 연구소장은 “지난주 어렵게 답변을 듣고 시간을 확정해 워싱턴까지 왔는데, 불과 세시간 전에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갑작스런 사임을 두고는 “개인적 결심”이란 공식 설명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가 배경의 하나로 거론된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정권 때인 2012년 세계은행 총재로 선임된 이후 첫 임기 4년 동안 아프리카 에볼라 확산 방지와 유럽ㆍ중동의 난민 사태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위기를 적극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한 대선전이 진행 중이던 2016년 9월 오바마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연임했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에는 김 총재가 확실한 민주당 쪽 인사여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계은행 개혁을 맡기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얘기가 세계은행 주변에서 돌았다.

다만 5년마다 진행되는 세계은행의 증자작업이 지난해 봄 성공적으로 끝나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은행을 예산으로 압박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총재는 향후 민간기업에 둥지를 튼다는 거취도 밝혔다. 그는 “향후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업에 합류할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 참여하는 기회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기후변화와 신흥시장의 인프라 부족 같은 주요 글로벌 이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라고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총재는 5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은행 총재가 되기 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을 지내는 등 보건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2009년 한국계 최초로 미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 총장에 올랐다.

세계은행 김용 총재.

세계은행 김용 총재.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설립을 주도했으며, 세계은행의 최대 지분(16%)을 갖고 있다. 미국의 의중이 세계은행 총재 선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세계은행 설립 뒤 70여년 동안 총재는 미국인이 맡았다.

김 총재는 특히 내부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4억 달러(약 4382억원)의 행정비용을 줄여 재투자하는 등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내부적으로는 반발도 많았다.

세계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내달 1일부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CEO)가 임시로 총재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ㆍ뉴욕=김현기ㆍ심재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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