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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체육관 집결한 국민은행 노조 "파업은 사측의 몽니 탓…재협상 의사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오후 7시 30분, 빈 의자만 가득했던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8 임단투 총파업 전야제'에 참여하려는 KB국민은행 노동조합원들이다.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오후 8시부터 사회자가 안내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흡연구역 등을 안내하던 사회자는 "지금부터 사용자 측 인원들은 다 나가달라"며 "(조합원들은) 인사부 등 사 측 직원을 발견하는 즉시 밖으로 퇴실시켜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행사가 한 시간여 남았지만 준비된 좌석은 1%도 채 차지 않았다. 사회자는 "사 측의 악랄한 방해로 조금 늦게 출발하는 곳이 있다. 동요하지 마시고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청 지역에 앉아계신 김XX 팀장님 나가주세요!"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7일 오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 국민은행 노조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정용환 기자

7일 오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 국민은행 노조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정용환 기자

오후 8시 20분쯤 박홍배 노조위원장이 단상에 올라와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박 위원장은 "오늘 오후 4시 15분에 교섭이 끝났는데 그 이후부터 굉장히 많은 부당 노동행위가 발생했다. 지점에 감금되신 분들도 있고 (조합원들이) 차를 못 가지고 가게 하거나 차를 돌리게 한 지점장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심하시고 전국에 계신 동기 친구분들 전화해서 '너 왜 빨리 안 오냐' 전화 한 통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박 위원장은 행사 시작 직전 짧게 기자회견을 하고 "(사 측에서 연락을 준다면)재협상 할 의지가 있고 밤을 새워서라도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다. 그는 "어쨌든 국민들과 고객들에게 큰 불편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고 마음이 매우 무겁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전야제 행사는 예정된 시각에 맞춰 오후 9시쯤 시작했다. 행사 30분이 지난 9시 30분 현재 노조 측이 마련한 총 7000여개 좌석 중 80%인 5500개가량의 좌석이 찼다. 노조 측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전국에서 조합원들이 모여들고 있다"며 "제주도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조합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박 위원장과 일문일답.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정용환 기자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정용환 기자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뭔가.
"새로 들어온 청년 은행원들과 창구를 오랫동안 책임져왔던 여성 은행원들에 대한 차별이 오늘 우리 직원들을 여기 모이게 한 이유다."

-성과급 지급이나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어떤 결론이 나왔나.
"성과급 지급에 대해선 노사가 이견을 좁히긴 했으나 사 측이 단서조항을 달았다. 금융노조와 금융사용자협의회가 지난해 합의했던 임금피크제 개선에 대한 사항을 사용자 측이 대표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도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 중 하나다."

-허인 행장이 보로금(특별 보너스)과 시간외 수당을 합쳐 300%의 성과급을 주겠다고 했다.
"실제 우리 직원들이 일을 하고 받지 못한 시간외 수당만 150% 정도가 넘는다고 추산한다. 다른 은행들에 비해 사용자가 제시했던 경영 성과급 수준은 그렇게 큰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KB국민은행은 2007년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만 55세라는 이른 시기에 임금피크가 시작되고 갑자기 급여가 (기존의) 50~60% 정도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기업들에 비해 조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걸 금융 산별 교섭에서 각각 1년씩 진입 연령을 늦추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조 측 요구사항은) 2018년도 산별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7일 오후까지 협상의 성과는 없었나.
"6일 오후 7시부터 7일 오전 5시까지 마라톤 교섭을 했다. 그리고 오전 11시 30분에 잠시 쉬었다가 오후 3시에 다시 교섭을 시작했다. 최종 교섭은 4시 15분에 끝났고, 저는 교섭을 마치는 자리에서 허 행장에게 '오늘 저녁에라도 교섭할 용의가 있다. 연락을 주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직까지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연락 오면 재협상 의지가 있나.
"재협상 의지가 있고 밤을 새워서라도 협상을 하겠다. 어쨌든 국민들과 고객들에게 큰 불편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고 마음이 매우 무겁다. 죄송하다."

-성과급 잔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시중은행들의 임금 및 단체협상이 대부분 12월에 마무리됐고 그 은행들의 성과급 수준이 대동소이하다. 이미 저희 노사 간에도 성과급은 지난 주말에 어느 정도 의견 일치가 돼 있다. 많은 분이 성과급 문제 아니냐고 하시는데 분명히 성과급 문제가 아닌, 차별과 산별교섭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겠다는 사 측의 몽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전 임원이 다 사표를 냈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사 측이 전 임원으로부터 사표를 제출받았다고 하는 것은 크게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 측이 분명히 파업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을 통해 파업을 막기 보다는 직원들을 파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쪽으로 애를 썼다고 본다. 만일 자신들의 말을 지킨다라고 하면 저는 은행의 최고 경영자가 사표를 다 수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 측은 양보를 일부 했다는데 노조측은 양보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협상은 어느 일방의 협상 목적만 충족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된다. 당연히 저희도 일부 쟁점들에 대해선 양보할 의사가 있다."

-중점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건 뭔가.
"6일 오후 7시 협상도 저희가 제안해서 행장과 하게 됐고 밤을 새워서 대화 나눴다. 제가 행장께 말씀드린 첫 번째 안건은 청년 은행원들에 대해서 부당하게 근로조건을 부과했던 기본급 상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사안은 산별교섭에서 합의된 '임금피크제 1년 연장'과 관련해 사용자 측이 그걸 일부 수정하자고 했던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수용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이것을 '근로조건의 후퇴'로 느끼지 않을 수준으로 보상해주는 방안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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