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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다 이룬 꿈 남기고 간 임세원 교수…눈물 속 발인

중앙일보

입력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영결식이 4일 오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 강북삼성병원 제공]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영결식이 4일 오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 강북삼성병원 제공]

4일 오전 7시 서울 강북삼성병원 영결식장은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참변을 당한 임세원 교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온 400여명의 동료들로 가득찼다.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은 차례로 영정 앞에 국화를 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이 끝난 뒤 유족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병원을 한 바퀴 돌았다. 임 교수가 마지막으로 평생 환자를 돌봐온 진료실과 연구에 몰두했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하기 위함이었다.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오전 7시50분 쯤 빈소가 마련됐던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임 교수의 발인이 엄수됐다. 영정사진과 위패를 든 임 교수의 두 아들이 앞장섰고, 임 교수의 동료인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포함한 8명이 관을 들고 뒤따랐다. 첫째 아들은 앞서가던 동생의 어깨를 꼭 감싸기도했다. 관을 뒤따르던 임 교수의 아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장례식장 직원의 몸에 지탱해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임 교수의 관이 검은 영구차에 실리자 임 교수의 아내는 관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울음 소리와 ‘나미아미타불’을 외는 스님의 목탁소리만이 장례식장 마당을 울렸다.

4일 오전 임 교수의 관이 검은 영구차에 실리자 임 교수의 아내가 관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4일 오전 임 교수의 관이 검은 영구차에 실리자 임 교수의 아내가 관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임 교수의 동료들도 하나같이 참담한 표정으로 눈물만 흘렸다. 장례식장 담장 밖에도 수십 명의 의료진이 장례절차를 지켜봤다. 영구차가 떠나자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며 사랑하는 동료를 보냈다. 임 교수는 서울시립승화원에 안장된다.

생전 '보듣말' 프로그램 2.0 업그레이드위해 노력

고(故) 임세원 교수의 영정 [뉴스1]

고(故) 임세원 교수의 영정 [뉴스1]

임 교수는 떠났지만 그가 생전에 이루고자했던 꿈은 진행형이다. 임 교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보듣말)의 개발자로 해당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전국에서 7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군을 위해 자살 예방 전문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군인들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도 짰다. 군인을 위한 ‘보듣말’ 프로그램은 지난해 공군에 이어 올해 육군에도 도입될 예정이었다.

임 교수의 절친한 동료인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임 교수는 생전 ‘보듣말’ 프로그램을 2.0 버전으로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ㆍ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동료들에게 같이 하자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본인도 많은 노력을 했다”며 “임 교수의 유지 받들어 남아있는 우리가 꼭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임 교수의 유족들도 조의금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백 교수는 자신의 SNS에 “조의금은 일부 장례비를 제외하고 절반은 강북삼성병원에, 절반은 고인이 못다 한 일을 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병원 측에서도 유족의 뜻을 확인했다. 이날 병원 관계자는 “강북삼성병원에 임 교수의 추모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의자 "머리에 소형 폭탄을 심은 것에 대해 논쟁하다 범행"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모 씨가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모 씨가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이날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종로경찰서는 피의자 박모(30)씨가 조사 중 범행 동기로 추정되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는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것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거나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경비를 불러서...”라고 진술했다. 다만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나온 진술 중 일부이기 때문에 이를 범행 동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경찰은 3일 강북삼성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찰서 유치장, 피의자의 집 등 4곳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여기서 확보한 진료 기록과 피의자의 핸드폰, 컴퓨터 등을 통해 정확한 사건 경위와 범행 동기 등을 밝힐 예정이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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