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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기만 30년…한 손으로도 최고 제품 만드는 그의 집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2)

나무로 만든 그릇인 목기와 평생을 함께 하는 장인을 만났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에도 공방에 나와 목기를 깎을 때 생기는 나무 부스러기인 칼 밥이 수북이 쌓인 바닥에 발을 묻고 32년째 변함없이 정성스럽게 목기를 만드는 최현규 장인(49)이다.

나무 부스러기 칼밥이 수북이 쌓인 공방에서 최현규 장인(49) 모습. [사진 이정은]

나무 부스러기 칼밥이 수북이 쌓인 공방에서 최현규 장인(49) 모습. [사진 이정은]

최현규 장인은 1987년 우연한 인연으로 목기 명장 故 서태랑 장인을 스승으로 만났다. 서 장인은 왼손 하나로 10대부터 60년 이상 목기를 깎다가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최 장인 역시 15살 때 사고를 당해 한 손을 잃었다. 장애 극복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던 중 스승 덕분에 용기를 내 17살부터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는 사고 후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려는 마음이 절박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보니 나무. 이것 밖에 길이 없더라고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무엇보다 같은 길을 걸어오신 스승님의 영향을 받았죠." 불편한 손으로도 최고의 목기를 만들며 후배 양성에 나선 스승과 이를 묵묵히 따라준 제자의 만남은 뭔가 특별한 게 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공장서 목기 찍어내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목기는 공장을 돌릴 정도로 시장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최 장인이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은 공장은 통나무의 안을 파내 바가지같이 큰 그릇인 함지박을 주로 만들었다. 1998년까지 10년 이상 몸담고 일한 목기 공장이 경기 악화로 폐쇄돼 서울 근교 나무 조각 공방에서 2년 동안 일을 도왔다. 그때 나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2000년부터 스승인 故 서 장인이 독립해 행주산성에 자리 잡은 목기 공방에서 다시 한번 수공예 목기 제작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2003년 그 공방에 불이 나서 문을 닫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최 장인도 독립하게 됐다.

최현규 장인의 도구들. [사진 이정은]

최현규 장인의 도구들. [사진 이정은]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 2~3번 이사 끝에 2014년 겨우 현재의 공방과 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정말 여기까지 온 것이 대단했다. 현재의 나무 깎는 내공은 섬세한 예술적 감각, 수공예의 장인정신 등을 배운 과거가 있기에 가능했다.

"저는 기계로 생산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내려가면 수공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는 매일 똑같은 목기를 만들지 않는다. 잘 건조된 나무라는 기초 재료도 중요하지만 건조 방법과 나뭇결에 따라 적재적소에 맞는 것을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3~4년 전부터는 옻칠도 직접 한다. 장인은 원래 백골(뼈대를 만들어 놓고 아직 옻칠하지 않은 목기)만 만들었다. 현재도 일부에선 분업화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많은 수요를 처리하기 위해선 목기 만드는 일과 그 위에 천연 도료를 입히는 일을 하는 장인이 각각 따로 있었다.

목기 제작 과정은 이렇다. 우선 나무 원목을 자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톱으로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띠톱(재단기)으로 그릇 모양과 얼추 비슷하게 깎는다. 이때 나온 백골을 처음 자른 것이라고 해 ‘초갈이’라고 부른다. 이 그릇을 다시 정교하게 깎은 것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재갈이에 옻칠을 하면 목기가 완성된다. 살아 숨 쉬는 나뭇결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옻칠을 여러 번 하되, 너무 두껍지 않게 올려야 한다.

최현규 장인이 초갈이 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최현규 장인이 초갈이 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이때 목기에 실이나 삼베를 감는다. 나무의 성질인 뒤 틀어짐을 막기 위해서다. 나무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은행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나무를 원형상태로 1차 초벌 갈이를 해 적정온도에서 건조하고 2차 가공한 뒤 천연 도료 옻을 사용해 건조시키고, 덧칠 과정을 7~8회 이상 반복하는 것이다.

목기 제작 과정서 가장 중요한 건 건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조다. 사용할 나무를 5개월 이상 건조하고 어떤 부분이 적재적소에 쓰일지는 경험으로 판단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뒤틀리지 않는 그릇이나 도마, 컵을 만드는 일이다. 나무는 자연의 재료인지라 실생활에서 쓰이다 보면 수명이 오래 못 갈 수 있다. 잘 건조된 나무에 숙련된 장인이 제대로 옻칠을 입히면 갈라지지 않고 오래 간다고 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제기(제사 때 음식을 담는 목기 그릇)는 대를 물려 사용하는 그릇이다. 정성 들여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옻칠을 아끼지 않아야 피막 형성이 잘되고, 대를 물려 써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옻칠한 목기에 담긴 음식은 방부·방습은 물론, 변색이 없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옻칠 제기가 사용됐다. 하지만 요즘 시중의 제기들 대부분은 옻칠이 아닌 대량생산된 목기다.

목기 나무들. [사진 이정은]

목기 나무들. [사진 이정은]

오래전부터 중국은 ‘흙 문화’를 토대로 ‘본차이나’ 도자기를 발전시켰다면, 한국은 ‘나무 문화’였다. 목기는 제대로만 만든다면 따뜻한 것을 담아 놓아도 된다. 나무로 된 그릇은 공기가 통하니까 음식이 썩지 않는다. 목기 밥그릇에 밥을 담아놓으면 3~4일 동안 변질하지 않고 원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웰빙을 추구하는 요즘 식기·다기·수저 등을 옻칠 목기로 만들면 어떨까. 옻칠 목기의 디자인과 실용성을 높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의 식탁이 뭔가 고급스러워지고, 이에 따라 삶의 질도 올라갈 것 같다.

강원도 인제나 전북 남원이 한국의 목기를 탄생시킨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목기는 남원의 특산품으로 그 뿌리는 조선 시대다. 남원 실상사의 옻칠 발우(절에서 사용하는 식기)가 전통 목기로 유명하다. 1993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목기장이 명맥을 잇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 목기가 예전만큼 실생활에 사용되지 않아 안타깝다.

최 장인은 우리나라도 북유럽처럼 나무를 사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힘은 바로 나무에 대한 애정과 본보기가 됐던 스승의 삶 덕분이었다. 나는 목기를 구매할 때 어떤 나무인지, 나뭇결은 예쁜지, 어느 분이 만들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 장인을 만난 후엔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어졌는가를 우선시하게 됐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래 보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정은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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