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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빚이 '마이너스 통장'인가…재정철학 빈곤 드러낸 文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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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정은 써야 할 땐 써야 한다. 문제는 어디 쓰느냐다. 지금은 이를 정하는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건전재정포럼에서 한 얘기다. 그가 지적한 현 정부의 실책을 최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과 기재부 간 진실 공방을 취재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정부가 재정 정책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됐다. <중앙일보 1월 2일자 B1면>

기재부는 현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고 적자국채(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 발행을 시도했다는 신 전 사무관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적자국채(4조원 규모)를 발행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0.2%포인트 정도만 늘어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과적으로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없었다는 점도 반박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 의견 제시가 '강압적인' 게 아니었다"고도 주장했다.

'0.2%포인트 정도만' 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지, '결과적으로'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없었다고 해서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 따져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재정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최고 행정기관인 청와대의 빈곤한 재정 관리 철학이다. 전문가들은 기재부 실무자들이 상부 의견에 반대해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나랏빚을 늘리면 국민 부담도 늘기 때문에 되도록 이를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재정을 운영하자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나랏빚 내는 것을 비상시 '마이너스 통장' 뚫는 일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됐다.

적자국채 발행 논쟁이 있던 2017년 말 기재부 실무진이 청와대 의견을 덥석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기재부 발표처럼 국가채무비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경기 부양, 포퓰리즘적 복지 확충을 위해 얼마든지 빚을 내도 된다는 '기회주의적 재정 운용' 행태는 더욱 만연해졌을 공산이 크다. 써야 할 곳은 많은 데 벌이에 한계가 있다면, 결국 빚에 기대야 하는 것은 가계나 국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 '빚'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준다는 측면에서 가능하면 줄이는 게 좋다. 이번 사태에서 확인한 정부는 알뜰살뜰 살림을 챙기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신 전 사무관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 아닐까.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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