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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빌 게이츠의 원전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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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내가 올해 일하면서 배운 것(What I learned at work this year).’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지난해 말 자신의 블로그(www.gatesnotes.com)에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어떻게 해야 혁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까 하는 생각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알츠하이머, 소아마비, 에너지, 전염병, 유전자 편집 등 5개 분야를 짚었다. 그중에 기후변화의 해결책을 거론한 ‘에너지’가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뜨거운, 원전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어서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태양광·풍력 발전 단가가 떨어진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그 둘은 햇빛이나 바람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대용량 설비는 가까운 시일 안에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내년에 나는 미국이 원전 연구를 선도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자 한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으면서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최적의 기후변화 해결책 가운데 하나다. 안전 문제 등이 있다고 하나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개발 중인 ‘진행파 원자로(traveling wave reactor)’가 그런 것이다. 안전하고, 핵연료 폐기물이 거의 없으며, 핵무기 확산도 방지할 수 있다.”

여기서 언급한 ‘진행파 원자로’는 2006년 게이츠가 세운 ‘테라파워’라는 업체가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게이츠가 투자 이익을 노리고 원전의 가능성을 거론한 것 같지는 않다. 원전 맹신론자도 아니다. 게이츠는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등 억만장자들과 함께 펀드를 만들어 지열 발전 회사나 대용량 배터리 업체 같은 신재생 에너지 벤처에도 투자하고 있다. 2013년 서울대 강연에서는 “안전과 폐기물 문제가 있는 원전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요컨대 원전이든 신재생이든, 혁신을 통해 더 싸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활용하자는 게 게이츠의 메시지다. 그러면서도 원전을 강조하는 걸 보면, 현재로썬 원전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햇빛과 바람이 한국보다 훨씬 풍부한 미국에서인데도 그렇다. 원전이라면 눈을 질끈 감는 문재인 정부와 사뭇 다르다. 멀쩡히 짓고 있던 신한울 3·4호 원전 공사마저 중단시킨 게 한국 정부다. 과연 누가 맞을까. 게이츠의 생각처럼 새로운 혁신 원전이 등장해 주요 에너지원의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인가, 아니면 원전은 맥없이 종적을 감출 것인가. 머지않아 판가름난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