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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전지적 참견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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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당신의 인생에 참견해 드립니다.”

개그우먼 이영자에게도 처음엔 반가운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에 참견한다니. 그러나 그 덕분에 이영자는 지난 연말 진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MBC 연예대상을 받게 해 준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전참시)의 성공 덕분이다. 맨 앞 인생 참견 인사말은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다. 신기하면서도 어설픈 연예인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예능이었다. 소설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전지적(全知的) 작가’를 패러디한 제목도 참신했다.

그런데 의외의 포인트에서 대박이 났다. 참견과 고발을 담당한 매니저들이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개그맨 박성광과 스물세 살 매니저 임송, 이영자와 매니저 송성호 팀장이 함께 광고에도 나온다. 방송을 시청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들이 누구지?’라고 묻게 되는 방송계의 전형적인 앗싸(아웃사이더) 들인데 말이다.

자신의 매니저가 스타가 된 시상식장에서 연예인도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케어하는 연기자가 상 타는 게 매니저의 보람”이라던 송 팀장에게 트로피를 든 이영자는 말했다. “팀장님, 목표를 이루셨네요.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매니저입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향했던 카메라의 반대편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알면서도 쉽게 잊히는 무대 아래의 인생이 거기 있었다. 바라는 것 없이 시시콜콜 참견하는 소박한 이타심도 있었다. 화려한 무대 뒤의 오밀조밀한 직업의 세계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었다. 전지적 참견은 말하자면 훈훈한 동료애의 다른 이름이었다.

겉으로는 얼추 비슷하게 동료들 간의 참견이 늘 벌어지는 공간이 정치권이다. 그러나 최근 이타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전지적 비난’만 횡행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에서 벌어진 진실 공방의 현장도 그랬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수사관은 공익 제보자인가, 정치 브로커인가. 야당 의원들과 대통령 비서실장·민정수석은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둘 중 하나만 외쳤다. 서로 설득하지 못했고, 설득되지 않았다. ‘혹시 둘 다인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허용되지 않았다.

정초엔 ‘알릴레오와 홍카콜라의 대결’로 불리는 전지적 비난전(戰)이 예고돼 있다.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들은 ‘가짜뉴스 잡겠다’(유시민의 알릴레오) ‘뻔뻔한 게 진보다’(홍준표의 홍카콜라)라며 전초전을 시작했다. 웬만해선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독설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에 참견할지 걱정이 앞선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