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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EU 모두 내리막” 내년 세계경제 잔치는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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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상 주위에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이 계속될 경우 워싱턴DC의 관광명소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이 다음달 2일부터 문을 닫는다. [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상 주위에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이 계속될 경우 워싱턴DC의 관광명소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이 다음달 2일부터 문을 닫는다. [AFP=연합뉴스]

내년 세계 경기의 불시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G2(주요 2개국)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인한 후유증이 구체화하고,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되살아나는 듯했던 유럽연합(EU)과 일본의 경기 하강 등 악재가 동시다발로 쏟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3대 경제기구·4대 투자은행 분석 #미국 성장 둔화, 일본·EU는 꺾여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 본격화 #한국도 타격 … IT 수출 악영향 #블룸버그 “미·중 소비 감소 신호” #중국, 성장 침체에 대미 갈등 겹쳐 #드라기 “경기 하방 위험 커져” 경고 #제조업 관련 지수 3년래 최저치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신성환 홍익대 교수(경영학부)는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특히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 부진 가능성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 세계 경제는 온통 장밋빛이었다. 주요국 경제가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동반 성장하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축포를 터뜨렸다. 미국의 경기 확장이 주요 선진국을 압도하면서 온전한 의미의 ‘동반(synchronized)’ 성장은 아니었지만, 맥을 못추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 경제도 오랜만에 활력을 되찾았다. 한국은 2%대 저성장이 굳어지면서 세계 경제 호황을 공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1년 새 상황이 확 바뀌었다. 내년 글로벌 경제가 하강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통화 완화 정책에 힘입어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와 가속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다시 제동이 걸리는 격이다. 이번에도 주요국 경제의 동반 하락이 예상된다.

중앙일보가 IMF·세계은행·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 4대 투자은행(IB)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각각 펴낸 2019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모두 올해보다 내년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OECD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3.5%로 낮췄다.

IMF도 지난 10월 내년 전망치를 기존 3.9%에서 3.7%로 내렸다. 세계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올해(3.1%)보다 낮은 3.0%로 전망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곳곳에서 위험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며 “2017년 같은 가파른 성장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글로벌 IB가 내놓은 세계 성장률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3.8%에서 내년 3.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비행기 착륙시키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감속과 중국의 성장 약세가 세계 성장 속도를 완만하게 줄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JP모건은 내년 성장률이 2.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전망치는 3.1%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3.8%에서 내년 3.6%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올해 3.8%에서 내년 3.6%로 성장률 하락을 전망했다. 이 회사 캔디스 브라우닝 글로벌 리서치 헤드는 ‘최고점에서 최저점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거듭된 금리 인상에 따른 주요국과의 금리 격차, 중국과의 무역전쟁 해소, 미국 국내정치 교착상태가 세계 성장률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GDP 40%’ 미·중 성장둔화가 직격탄

세계 경기가 하강으로 돌아서는 주된 요인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 둔화에 있다. 내년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 효과가 사라진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해 돈줄을 더욱 죌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성장률 정체를 겪는 와중에 미국과의 무역갈등까지 덮치면서 경기 둔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6.6%에서 내년 6.2%로 하향 조정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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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내년 글로벌 경제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무역전쟁은 올해 시작됐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내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중은 2월 말까지로 예정된 무역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큰 진전이 있다”(29일 트위터)고 밝혔지만 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양국 갈등의 핵심인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 기술 이전 금지,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 ‘중국제조 2025’ 이슈에서 양국의 간극은 아직 넓다.

무역협상이 결렬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단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 전체로 고율 관세 부과를 확대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 GDP 성장률은 1.5%포인트 감소하게 된다고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분석했다. 최악의 경우 중국 성장률이 5%대로 급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올해 세계 경제 최고 승자는 미국이었다. 세금 감면으로 인한 소비지출 증가가 성장을 견인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세금 감면으로 미국 소비자에게 약 1200억 달러(약 134조원) 상당의 혜택이 돌아갔다. 경제가 탄탄해지면서 Fed는 올해 네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내년에는 금리 인상 횟수를 당초 3회에서 2회로 줄일 전망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최근 “어두운 방 안을 걸을 때 천천히 걸어야 하듯이 통화정책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JP모건은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1.9%로 둔화할 것으로 봤다. 올해 예상되는 3.1% 성장률에 비해 크게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2.9%에서 내년엔 2.7%로 감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얀 해지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융 여건이 본격적으로 긴축으로 돌아서고 재정 부양책이 사라지는 게 미국 경기 하강의 주요 요인”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에서 다수석을 확보함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정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여지가 줄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전쟁은 내년에도 신흥국에 위험을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를 둘러싼 EU와 회원국의 갈등, 영국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도 내년 유럽 경기 등락의 중요한 변수다.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를 우려하는 경고음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믿고 있지만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가 직접 경기 하강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ECB는 내년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7%로 내렸다. 같은 날 이강 중국인민은행 총재도 “중국 경제에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느슨한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무역량 감소도 글로벌 경기 후퇴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 무역성장률을 올해 3.9%에서 내년 3.7%로 낮췄다. 로버트 쿠프먼 WT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1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어 내년 초 무역성장률 전망치를 추가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국 제조업 경기는 이미 흔들리는 모습이다. JP모건과 IHS마킷이 발표한 11월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로 나타났다. 경기 확장 기준선 50은 넘었지만 2016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특송업체 페덱스는 지난 19일 국제 운송량 감소 전망에 따라 내년도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무역량 감소보다 큰 위험은 세계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 심리 악화다. 미·중 양국에서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는 초기 신호가 나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11월 소매 판매액은 3조5260억 위안(약 57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었지만, 시장 전망치인 8.8%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중국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있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미국 비영리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가 지난 27일 발표한 12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28.1로 전달(136.4)보다 8.3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7월 이후 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시장 전망치(133.5)에도 크게 못 미쳤다. 블룸버그는 “소비 심리가 악화하면 가계는 소비에서 저축으로 옮아가고, 기업은 투자보다 위기에 대비하게 되면서 경기가 위축된다”고 전했다.

경기 하강에 대한 공포가 침체(recession)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미 듀크대가 주요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500명 이상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48.6%가 내년 말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 응답했다. 82%는 2020년 말 침체가 올 것으로 봤다. 공포심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고용에 타격을 주고, 투자와 신규 주문이 줄면서 그 자체로 경기 급감에 영향을 준다.

반면에 국제기구와 IB들은 당장은 침체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률 하락 폭이 작고, 세계 경제가 10년여에 걸쳐 천천히 확장해 온 만큼 경기 하강 또한 완만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경기 불시착이 기정사실화하면서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 가능성에 각국 정부는 기대를 걸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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