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북핵 문제와 매우 연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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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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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뉴스1]

스티븐 비건. [뉴스1]

지난 19~22일 한·미 워킹그룹 2차 회의를 위해 방한한 스티븐 비건(사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북핵 이슈와 매우 연관된 사안”이라고 수차례 언급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속내 밝힌 비건 #북·미협상서 한국 입장 반영하려면 #대폭 증액 받아들이라는 압박 #2003년 이라크파병 요구 때와 비슷 #“핵 리스트 완전 신고는 비현실적 #비핵화 단계와 연동해 상응조치”

비건 대표의 발언은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기 위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된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내가 관여하는 일은 아니지만 진행 중인 협상의 디테일은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뜻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고 북핵 문제와 직접 연동시키지 않을까 우려됐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분담금 증액 압박은 26일까지 사흘째 이어졌다. 이라크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비용 부담을 나눠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며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계속 싸워주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우리는 더 이상 호구(suckers)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미군의 해외 주둔 비용 분담 원칙을 전면 재검토 중이며, 이를 위해 차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유효기간을 1년으로 할 것을 지난 11~13일 열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10차 회의에서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협정 유효기간은 5년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과 체결한 협정을 전면 재검토해 내년 중 주둔국 부담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협상 전략을 세운 뒤 다시 협상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는 물론 유효기간 1년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협상 연내 타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협상도 차기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공전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올해 약 9600억원인 분담금을 내년에 1조원 이상으로 올리기는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99센트와 1달러는 비록 1센트 차이지만 심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일종의 ‘장벽’이듯 9000억원대와 1조원대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미국은 올해보다 50% 인상된 연간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이슈와 북핵 협상 연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나서면서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 내에선 ‘평화를 위해 돈을 추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입장과 ‘국민 감정에 맞지 않는 부당한 증액 요구엔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상황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부시 행정부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북핵 해결 원칙’ 수용을 설득하기 위해 지지층이 강력 반대했던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을 때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한·미 동맹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며 “한국이 향후 협상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 동맹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비건 대표는 방한 기간 중 “미국은 비핵화 협상 로드맵을 완성했으며, 북한에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지만 아직 북한이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비건 대표는 또 “로드맵에는 북한의 단계적인 비핵화 조치와 연동된 미국의 상응조치가 담겨 있으며, 여기엔 대북제재 이슈도 담겨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핵시설과 핵물질·핵무기 등을 망라하는 완전한 신고서를 북한에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데 미국 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세현·전수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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