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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로 칭칭 감은 내 배낭, 마치 번데기 같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13) 

밀포드 도보여행을 시작하는 날의 걷는 거리는 짧다. 클린톤 산장까지 5km 몸풀기의 날이다. [사진 박재희]

밀포드 도보여행을 시작하는 날의 걷는 거리는 짧다. 클린톤 산장까지 5km 몸풀기의 날이다. [사진 박재희]

“장난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걸어?”
“우리 여행 가는 거 아니었어? 극기훈련 떠나는 거야?”

출발 열흘 전 우리는 이른바 최종점검을 위해 모였다. 이름에조차 ‘위대함’이 들어있는 그레이트웍스로 걷기 원정을 떠난다는 것은 휴일에 뒹굴대다가 엉덩이 긁으며 남산을 산책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루 15km가 넘는 산길을 걸어야 하니 기본 체력도 문제지만 빵 한 조각 살 수 없는 트랙을 걷는 동안 일용할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한여름이라도 산 정상에서는 영하의 날씨인 데다 언제 비와 우박이 쏟아질지 모르는 곳이라 비옷, 보온복, 갈아입을 옷도 날짜를 따져 챙겨야 한다.

여행을 떠나는 행위는 난도가 꽤 높은 또 다른 생활 과제를 요구한다. 꼴도 보기 싫은 부장님의 씰룩거리는 표정을 마주하더라도 억지 미소를 짓는 것과는 물론 차원이 다르다. 차근차근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난 램프요정 지니를 상상하며 보냈다. 준비를 다 마치고 짠~ ‘주인님 다녀오십시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는 사이에 떠날 날이 다가왔다. 벼락치기 버릇을 죽기 전에는 고치기 힘들 거라고 자책하며 부랴부랴 짐을 꾸려 나갔다.

역시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결정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배고프지 않게. 말하면 단순한 원칙이 실행하기는 어렵다. [사진 박재희]

역시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결정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배고프지 않게. 말하면 단순한 원칙이 실행하기는 어렵다. [사진 박재희]

언제나 의견이 분분했던 우리가 그날은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만장일치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절대 못 간다!”

20kg이 넘는 배낭은 혼자서 메기도 힘들었다. 가까스로 등에 지고 일어서면, 그 옛날 감히 신들에게 맞짱 떴다가 온 세상을 어깨에 떠받치는 벌을 받았던 아틀라스로 빙의했다. 신은커녕 바로 위 상사한테도 제대로 맞짱 뜬 적 없는 우리가 이런 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리즈시절에 비해 자그마치 30근이 넘는 비곗덩어리를 온몸에 골고루 은폐시켜 붙여놓은 나. 배낭을 메지 않아도 이미 무거운 사람인 내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상상해 보시라. 20리터짜리 수통을 몸통에 붙이고 다시 배낭을 메야 하는 꼴이라니) 그날부터 우리는 사실상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산행 고수들을 찾아가 추천하는 용품으로 다시 사들였다. 식량은 무조건 가볍고 찌꺼기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과체중이 위험합니다. 식이조절하세욧!” 수년째 의사에게 이런 협박을 들어도 꿋꿋한 심지로 맛을 포기하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별수 없었다. 트랙을 걷는 동안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겠다고 마트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스턴트 음식을 시식해왔건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맛있는 건 무겁고 찌꺼기가 많이 남는다!’라는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맛있는 건 영락없이 살찌는 음식이다’라는 진리만큼 잔인한 발견이었다.

밀포드 트랙 다박 산행을 준비하면서 음식물 찌꺼기도 되가져올 페트병을 챙기는 것도 중요했다.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준 도보여행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밀포드 트랙 다박 산행을 준비하면서 음식물 찌꺼기도 되가져올 페트병을 챙기는 것도 중요했다.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준 도보여행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우리가 걷기로 한 트랙에는 쓰레기통이 아예 없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으니 휴지, 포장지는 물론 음식 찌꺼기까지 가져간 모든 것들은 도로 가져와야 한다. 먹어서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은 내려올 때까지 고스란히 짐이 된다. 그날 이후 우리가 무게 계산에 동원한 수학적 노력은 달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한 계산만큼이나 치밀하고 정교했다.

칫솔의 손잡이를 잘라 몽당칫솔로 만들 정도로 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체중을 줄이면 많은 것이 해결됐겠지만 아시다시피 그 문제는 사실상 신의 영역이다) 온갖 수선을 다 떨어봤지만 무게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가방은 어른들의 앉은키보다 살짝 더 크고 초등학생 조카보다 무거웠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안락함에서 빼낸 자기 자신을 불확실의 세상으로 일부러 던지는 행위다. 누구도 다가올 길에서 꼭 필요한 것, 없어도 좋을 것을 미리 알 수는 없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음은 나중에야 깨달았으므로 그날은 완벽한 준비를 마친 터였다.

“이 상태로는 부치실 수 없어요”
아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출발도 하기 전에 마주한 첫 번째 시련이다. 항공사직원이 우리보다 더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모반듯한 캐리어와 달리 등산용 배낭은 애초에 이리저리 걸리고 찢어지기 편리하도록 생겼다. 대형 배낭을 화물로 부칠 때는 전용 덮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배낭 무게는 도보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사진 박재희]

배낭 무게는 도보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사진 박재희]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던 산행 고수들께서 어찌하여 이런 기본은 알려주지 않으셨단 말인가? 공항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을 바라보며 유체이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배낭을 감쌀 수 있는 커다란 ‘비닐봉지’. 공항을 뛰어다니며 찾아야 했다. 비닐로 배낭을 덮어가며 수화물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온몸에 땀. 일기예보 아나운서는 영하 16도를 기록했다며 엄포를 놓았건만 초보 원정대는 한바탕 사우나를 하고 난 꼴이다.

테이핑을 마치고 나니 진이 쏙 빠져버렸다. 비행기를 탈 수 없다던 우리들의 배낭이 드디어 테이프로 감겨 차례로 수화물 벨트로 옮겨지고 있었는데 모양새가 영락없이 거대한 번데기처럼 보였다. 우리 중 누군가 외쳤다.
“저것들 좀 봐. 누에고치 같지 않아?”

테이프로 온몸을 칭칭 감은 배낭은 영락없이 거대한 번데기, 누에고치처럼 보였다. 맙소사! 이건 일종의 계시가 아닐까? 떠나는 원정대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이미지가 번데기라니.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내게는 좀 그런 경향이 있다. 야박한 표현을 빌리면 ‘끌어다 붙이기 대마왕’이고 내 방식으로 말하자면 ‘우주가 보내주는 힌트를 잘 발견하는 편’이다. 비난을 무릅쓰고 커밍하웃했으니 눈 한번 흘기고 믿어주시라. 난 정말 잘 알아차린다! 그것은 분명 계시 혹은 약속이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어쩌면 번데기였으니까. 모두가 근질근질한 변태호르몬의 지배를 받으며 나비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몸무게에서 10% 정도의 무게를 최대치로 잡으라고 했지만 3박 4박 이상의 도보여행에서 20% 넘기지 않기도 까다로운 일이었다. [사진 박재희]

자신의 몸무게에서 10% 정도의 무게를 최대치로 잡으라고 했지만 3박 4박 이상의 도보여행에서 20% 넘기지 않기도 까다로운 일이었다. [사진 박재희]

원정대의 막내 브리아나는 2년 차 인턴사원, 말하자면 비정규직 직장인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쯤 다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서른 살 스텔라는 오래된 친구와 우정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했다. 여러 번의 헤어짐과 실연을 경험한 후 그녀는 진정한 관계의 시작을 고대하고 있었다.

포토저널리스트인 제이는 사표를 내고 자발적 실업자가 되었던 무렵이었다. 호기롭게 직장을 뛰쳐나왔지만 가끔 깊은 한숨을 쉬는 그의 눈썹 위로 불안이 스치곤 했다. 박 팀장 역시 수년째 미혼과 비혼의 경계에서 솔로 탈출을 꿈꾸고 있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도 변화였다.

원정대의 어른들도 다르지 않았다. 끈질긴 이직의 유혹을 오랜 고민 끝에 막 덮어버린 캡틴이나 달콤한 안식년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허 교수, 두 번째 스물다섯을 앞두고 새삼스럽게 ‘나는 누군가. 여기는 어딘가’ 질문을 시작한 나까지 모두. 겁이 나고 여전히 머뭇거렸지만 더 미룰 수 없어서 박차고 길에 오른 사람들, 번데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소망을 안고 떠나는 여정에 나타난 상징이 분명하다고 나는 믿었다. 나비가 될 번데기는 자기 속으로 토해낸 실로 몸을 감는다. 우리는 번데기가 되어 뚜벅뚜벅 갈 것이다. 엉금엉금 거대한 누에고치들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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