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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문준용 취업특혜설 수사했나" 판사 묻자 檢 놀라운 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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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검찰·여당은 왜 ‘문준용’ 나오면 주춤하나 

딸 취업 특혜 논란에 휘말리자 ‘문준용 국조’를 들고 나온 김성태 의원(왼쪽)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중앙포토]

딸 취업 특혜 논란에 휘말리자 ‘문준용 국조’를 들고 나온 김성태 의원(왼쪽)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중앙포토]

“재판장님, 저희는 문준용 특혜취업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기소한 것이 아닙니다”

검찰 “의혹 허위 전제로 기소 안 해” #“특혜의혹, 합리적 추론” 불기소까지 #수사 내용 공개 판결엔 이례적 항소 #민주당, 손혜원 국정조사 촉구 일축 #‘혜경궁 홍씨’ 불기소에도 침묵 일관 #‘반문’ 김영환이 되려 불기소 뒤집기 #위기탈출 이재명은 ‘유구무언’ 모드 #측근 남광우, 공공기관 부회장 영전

지난 여름 ‘국민의당 제보 조작사건’ 혐의로 재판받고 있던 김성호 전 의원(전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수석부단장)은 “문준용 특혜취업설의 진위 여부는 수사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검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 전의원은 “검찰이 역린(문재인 대통령 심기)을 건드릴까봐 ‘문준용 특혜취업설의 진위 여부’를 기소 내용에서 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혹여 정권이 바뀌어 부실수사 논란이 일 것을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은 것으로 들렸다. 검찰은 역시 두수 앞을 내다본다”

검찰은 묘하게도 ‘문준용 특혜 취업’이 쟁점이 되는 사건에 대해 줄줄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왔다. 자신의 부인(김혜경씨)이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를 통해 문준용씨 특혜 취업설을 집중거론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그러면 준용씨 특혜취업 의혹도 조사할 수 밖에 없게될 것”이라고 한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에 앞서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아들 특혜취업 의혹’을 주장하다 민주당에 ‘허위사실 공표에 따른 명예훼손’혐의로 고발당한 바른미래당 하태경·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에 대해서도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하 의원을 불기소하면서 설명한 대목이 주목된다. “피의자(하태경)의 (준용씨 특혜취업)의혹 제기는 다수의 신빙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일응 합리적 추론에 근거한 것이므로 (중략) 허위사실 공표 고의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검찰은 문준용 특혜취업설이 ‘허위’라고 단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빙성 있는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이라고 보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는 얘기다.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국민의당 제보 조작사건도 특혜취업 의혹과는 관계가 없었다. 특혜취업설을 주장한 제보 자료(녹취록)가 조작임을 알고도 폭로했는지 여부만이 쟁점이었다. 피의자였던 김인원 변호사(전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의 전언이다.

“종이에 적힌 내용이 중요한데 그건 제쳐두고 종이의 오염도만 따진 희한한 재판이었다. 검찰에 수십번 ‘특혜취업설의 허위여부가 본질아니냐. 그걸 기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사코 피하더라. 검찰이 그 문제도 초기엔 수사했지만, 허위가 아닐 공산이 커지자 덮어버리고 녹취록 조작 여부만 따진 것이라고 본다”

검찰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대목은 또 있다. 하태경 의원이 “내 사건을 수사한 내용을 공개해달라”며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자 항소를 한 것이다. 김인원 변호사는 “통상 정보 공개 판결은 1심 결정이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낮은데다 법원이 ‘국민의 알 권리’를 이유로 공개를 명령한 점에서 검찰이 항소를 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례적이다. 배경이 궁금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정보가 공개되면 검찰이 취업특혜 의혹과 관련해 문준용씨 측에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수사했을 의혹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소송을 했는데 검찰이 항소했다”고 했다. “검찰이 3심까지 끌며 최대한 공개를 미루려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으론 청와대에 ‘정권의 급소를 우리가 갖고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측면도 있을 거다.”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과 행사장에 입장하는 문준용씨(왼쪽). [중앙포토]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과 행사장에 입장하는 문준용씨(왼쪽). [중앙포토]

‘문준용’이 거론되자 야당의 급소 공격을 자제한 집권당의 대응도 이목을 모았다. 딸 취업특혜 의혹에 휘말린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딸 문제를 국정조사하려면 문준용 의혹도 같이 다루자”고 요구한 직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김성태 딸에 대한 국정조사는 계획에 없다”고 못박았다.

홍영표·김성태는 6년전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도 ‘문준용’건으로 혈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홍영표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했고 김성태는 한나라당 환노위 간사로, 환노위의 피감기관인 고용정보원의 문준용 특혜 취업을 파헤쳤다. 김성태가 “2년전(2010년) 딸 취업특혜 의혹에 휘말린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은 즉각 사퇴했다. 문재인 후보는 안 하나”고 추궁하자 홍영표는 “책임질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김성태 의원실 관계자는 “김성태는 2007년 문준용이 고용정보원에 재직할 때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지내 노동계에 돌았던 특혜 취업 의혹을 알고 있었고, 2012년 대선 직전 환노위 간사로 다시 이 문제를 다뤄봤다. 때문에 이번에 ‘문준용 카드’를 자신있게 던진 것”이라고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물었다.

문준용 특혜취업설을 이참에 털고가는 건 어떤가
“2012년부터 몇번을 울궈먹은 얘긴가. 여러번 파헤쳤지만 다 허위로 결론났다.”
대신 김성태 의원 딸 취업 의혹을 국정조사할 수 있게되지 않나
“(문준용 의혹은) 다 끝난 문제다. 그걸 왜 새 사건(김성태 딸 의혹)과 연결시키나”
김성태와 2012년에도 이 문제로 격돌했다.
“그 사람, 참…한번만 더 이 문제 꺼내면 그때는 진짜 사달이 날 거다.”

지난 21일 “더 이상 떠들지 못하게 털고 가자”며 ‘문준용 의혹 국정조사’수용을 촉구한 손혜원 민주당 의원도 이후 침묵을 지키며 주장을 이어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김현 사무부총장은 지난 22일 방송 인터뷰에서 “개인 의원의 얘기다. (당의) 공식적 입장은 아니라 본다”고 했다. 손 의원 주장을 일축한 셈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대변인을 지낸 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당이 ‘문준용’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는 보도는 잘못됐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신중한 입장에서 좀 더 확인한 뒤 국정조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문준용 의혹이 자꾸 거론되니 국정조사를 통해 끝장을 보면 좋지 않나”는 질문에는 “내가 대선때 후보 대변인을 하며 허위임을 분명히 확인했다.조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혜경궁 김씨’사건 불기소에 대해 민주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2016년 ‘친문패권주의’를 비난하며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한 김영환 전 의원(6·13 지방선거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가 불기소에 반발해 재정신청을 낸 것도 주목된다.

김 전 의원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 하루 전인 지난 10일 “불기소를 예감하고” 김혜경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 때문에 사건 고소인만이 가질 수 있는 재정신청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민주당내 집안 싸움에 해당하는 사건을 왜 재정신청했나
“이재명에게 워낙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반드시 기소돼 심판받아야할 사람이란 생각에 했다.”
‘혜경궁 김씨’사건은 이재명을 공격하는 친문계와 이재명의 싸움인데 ’반문 선봉’인 당신이 친문 편에 선 모양새가 됐다.
“계파적 시각을 떠나 이 지사의 죄를 확실히 물어야한다는 판단에서 나선 거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문준용 특혜 취업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준용씨 특혜취업 의혹이란 쟁점은 두고두고 현 정부에 부담을 지울거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한다며 정치 전반의 도덕적 수위를 지나치게 높여놨다. 이 때문에 문준용 특혜취업 의혹은 그들에게 부메랑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문준용 카드를 꺼낸 끝에 혜경궁 김씨 사건 불기소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이재명 지사 측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의 한 측근은 “불기소 처분으로 다 끝난 사안 아니냐. 이제는 우리와 ‘문준용 의혹’을 연결시키지 말아달라. ‘유구무언’이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재명과 친문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가 된 만큼 이 지사 측에 ‘문준용’은 언제든지 다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의 측근으로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에 재직할 당시인 2007년 고용정보원 간부를 지내 “특혜취업설 전말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 남광우(53)씨의 거취가 주목된다. 그는 이재명 지사의 중앙대 법대 후배로 이지사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지낸 핵심 측근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선 이재명 휘하를 떠나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인 환경보전협회 상근부회장으로 변신했다. 이 협회는 환경부 고위직 출신들이 요직을 맡아왔으나 올해 들어 사실상 전멸하고, 친노 인사나 시민단체 출신이 그 자리를 메워 문재인 정부의 전형적인 ‘코드 인사’란 평을 듣는 곳이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지낸 이은희(54)씨가 경영관리본부장을 맡은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친문 세력과 싸우는 비노 이재명의 측근이었고, 환경 분야 전문가도 아닌 남광우씨에게 환경보전협회 상근 최고위직(상임이사 연봉이 1억2천5백여만원)이 주어진 점은 이채롭다.

한때 그를 보좌관으로 썼던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의 전언이다. “최근 지인 장례식장에서 남광우랑 조우했는데 ‘환경보전협회 부회장’명함을 주길래 ‘이재명 사람이 왜 이재명 따라 경기도청에 안 가고 여길 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얼버무리더라. 환경을 다뤄본 경험이 없는 그가 환경 관련 공공기관 고위직에 오른 건 현 정부와 뭔가 (연줄이) 생겨서일지도 모르겠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