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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크리스마스 캐롤 부르면 징역 5년형 받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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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1년을 기다렸어"

영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대 축제입니다. 크리스마스 하루를 위해 1년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근로자 대부분이 25일부터 1월 1일까지 일주일 간 휴식을 취하고, 학생들은 크리스마스를 포함해 2주 가량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을 갖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12월 한 달 전체가 '크리스마스달'인 셈입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대대적으로 기념할 수 있는 것은 2004년 제정된 '크리스마스 영업법(Christmas Day Trading Act)' 덕분인데요. 이 법에 따르면 매장 면적 280㎡(약 85평) 이상의 상점은 크리스마스에 영업을 할 수 없습니다. 법을 어기면 최대 5만 파운드(약 7128만원)의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즐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섭니다.

이슬람 국가 브루나이에선 캐롤 "안 돼" #중국은 산타클로스 인형 판매 단속 #"크리스마스 살리겠다" 미국선 대선 공약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켄싱턴궁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영국 왕실 페이스북]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켄싱턴궁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영국 왕실 페이스북]

법까지 만들어 크리스마스를 사수하는영국과는 정반대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서는 안 되는 나라가 여럿 있습니다. 게다가 서방 국가인데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면 비판받는 곳도 있죠. 성탄절을 맞는 각국의 이색 풍경을 [고 보면모 있는 기한 계뉴스-알쓸신세]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탄압'과 '유화'의 반복…다시 시작된 빙하기

중국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요. 일단 올해는 중국 거리에서 산타클로스 인형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열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 전대)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창하며 종교·사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이 발표 후 신화통신‧CCTV 등 관영매체가 일제히 크리스마스 관련 보도를 중단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은 주요 기관과 대학에도 크리스마스 관련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가 전달됐다고 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공연이나 기독교 관련 활동은 물론, 산타클로스 인형을 판매하는 것도 단속 대상이라는군요.

지난해 10월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선포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선포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신화=연합뉴스]

 늘 그랬던 건 아닙니다. 중국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정책은 ‘탄압’과 ‘유화’를 오고갔죠.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중국 공산당은 설립 당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선교사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탄압의 결과인지, 중국 13억 인구 중 무신론자가 차지하는 비율(61%)은 한국(7%)나 일본(31%)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의 크리스마스 풍경. [연합뉴스]

지난해 베이징의 크리스마스 풍경. [연합뉴스]

 그렇다고 공산당이 수십년 간 ‘채찍’만 휘두른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엔 제한적이나마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이 실시됐습니다. 정부에 협조하는 범위 하에서 공개적인 종교 활동을 인정해주기도 했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TV에서 크리스마스 전야 길거리의 넘치는 인파를 전하는 뉴스를 볼 수 있었죠.

올해 크리스마스에 중국에서 '크리스마스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서도 일단은 아니라는 제스처입니다. 또다른 관영 매체는 "일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규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며 해명하고 나섰습니다.

베이징의 한 교회에서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EPA]

베이징의 한 교회에서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EPA]

부정할 수 없는 것은, 2016년 시진핑 주석이 “확고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자만이 공산당원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뒤 당국이 대대적인 ‘종교 단속’에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9일 중국 쓰촨성에선 경찰이 지하 교회를 급습해 목사와 신도 100여 명을 체포했습니다. 앞서 지난 9월에도 베이징 경찰이 중국 최대 개신교 교회인 '시온'을 폐쇄하는 일이 있었죠. 다시 '빙하기'가 시작된 겁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감방 가는 나라 

무슬림 국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사우디아라비아 세관 당국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한 트위터 유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냐”고 물었고 이에 당국이 “왕가의 원칙에 따라 크리스마스 트리는 금지됐다”고 답변했는데, 이것이 논란을 일으킨 겁니다.

중동 국가인 이란 테헤란의 거리에서 23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고 있다. 이란은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지만 아르메니아 계통의 소수 기독교도를 인정하고 있다.

중동 국가인 이란 테헤란의 거리에서 23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고 있다. 이란은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지만 아르메니아 계통의 소수 기독교도를 인정하고 있다.

트리 금지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중에는 기독교인이 다수 있고, 트리를 금지하는 것은 그들의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올해 6월 사우디에서는 최초로 여성들에게 운전 면허증을 발급하며 국제 사회를 놀라게 했는데요. 변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뿌리를 둔 크리스마스만큼은 여전히 금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지난 6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의 에스라 알부티 전무가 발급 받은 사우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6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의 에스라 알부티 전무가 발급 받은 사우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면 감옥행인 나라, 브루나이도 있습니다. 브루나이의 국왕은 3년 전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으나 공공장소에서 해서는 안 되고, 무슬림에게 크리스마스 계획도 귀띔해선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행위를 하면 최대 5년의징역형에 처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물론, 캐롤도 안 됩니다.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 부르지 못하고…

종교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넘어온 개척자들이 세운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최근 논쟁의 대상입니다. 얼마 전 네브라스카주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상징물을 금지해 논란이 일었는데요. 이 선생님은 “모든 아이의 문화를 배려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산타 장식과 트리를 비롯해 지팡이처럼 구부러진 크리스마스 장식용 사탕 등을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 지시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5일 트위터에 성탄절 축하 메시지와 함께 공개한 사진. [사진 트위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5일 트위터에 성탄절 축하 메시지와 함께 공개한 사진. [사진 트위터]

알파벳 J 모양의 사탕이 예수(Jesus)를 상징하기 때문이란 설명이었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학부모들과 기독교 단체가 교육청에 “크리스마스를 적대시하는 행위는 미국 헌법에 어긋난다”며 항의했고 교장은 무기한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같은 갈등 배경엔 미국 내 종교 점유율 변화가 있습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 기독교인은 최근 7년 간 78.4%에서 70.6%로 감소했습니다. 미국 내 기독교인의 평균 연령은 50세인 반면, 무슬림의 나이는 33세로 모든 종교 중 가장'영(young)'합니다. 무슬림 등 비기독교인의 이민이 늘고 이런 가정의 출산율이 기독교를 압도하면서 생겨난 변화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비기독교 신자를 배려하기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리데이(Happy holidays)'와 같은 인사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내가 당선되면 우리는 다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다수 기독교 신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이유에섭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내외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별장에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후원하는 ‘산타 추적’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선물받을 어린이들과 통화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내외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별장에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후원하는 ‘산타 추적’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선물받을 어린이들과 통화했다.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 역시 ‘해피 홀리데이’보다 ‘메리 크리스마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내용의 여론 조사를 인용해 “유대인이나 무슬림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까진 '정답'이 없어 보입니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건 1949년이지요. 석가탄신일은 이보다 26년 뒤인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최근 한국에 무슬림 이민·관광객이 늘면서 이들의 전통 풍습인 '라마단'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런 '문화적 상대성'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국에서도 언젠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이 조심스러워질 수 있으니까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강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닙니다"

 독일 베를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기견 보호소, ‘티어하임 베를린(Tierheim Berlin)’이 있습니다. 최근 이곳에 ‘12월 반려동물 입양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연말연시 분위기에 들떠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선물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노버·브레멘 등 주요 도시의 반려동물 보호소들도 잇따라 반려견 입양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방침에 따라 입양을 원하는 가족은 한 달 간의 숙려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데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강아지 선물'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떨까요?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도그 트러스트(Dogs trust)는 40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주고 받는 것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사진 도그 트러스트]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도그 트러스트(Dogs trust)는 40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주고 받는 것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사진 도그 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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