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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되면···서울은 '남북' 아닌 '동서'로 나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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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면적 605.28㎞의 거대 도시 서울은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으로 나뉜다. 행정·법률적 편의를 위해 나눠진 공식적 권역이다. 하지만 실제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생활권은 공식적 경계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각자의 주거지와 직장, 이를 둘러싼 교통망 등 온갖 변수가 고차원 방정식처럼 작용해서다.
 중앙일보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 모빌리티와 함께 심야시간(오후 11시~오전 4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생활권을 분석했다. 택시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사실상 없는 시간대에 사람들이 동·구·시로 갈라진 행정적 경계를 넘어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서울 권역의 택시 출발지와 도착지 정보(9월 1일~10월 31일 데이터)를 활용해 상호 이동이 많은 동끼리 연결하는 클러스터링(clustering) 방식으로 분석했더니, 서울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도 일대로 이어지는 2개의 거대 생활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강남 생활권은 회식도 강남, 서부 생활권은 회식도 서부

지도에서 파란색으로 구분된 '강남생활권'에는 서울 동쪽 지역과 경기도 하남·남양주시 일대 222개 동이 하나로 묶였다. 강남역이 위치한 강남구 역삼1동이 최중심지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까지 이어진다. 북쪽으로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남쪽으로는 과천시 갈현동이 경계다. 주황색으로 구분된 '서부생활권'에는 서울 서쪽 지역과 경기도 부천·고양시 일대 239개 행정동이 포함됐다. 북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 남쪽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 서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상2동까지가 경계다. 이 생활권을 구성하는 심야시간 교통거점은 종로구 종로1234가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용산구 이태원1동, 마포구 서교동 등으로 나타났다. 두 생활권의 동-서 경계는 용산구 한남동, 동작구 흑석동, 관악구 신림동을 잇는 'C'자 형태 선으로 갈렸다. 서울 북쪽 지역은 두 생활권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독자적 허브를 갖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을 담당한 김정민 카카오 모빌리티 데이터랩 연구원은 “해당 시간대 택시 이용 목적이 대부분 귀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퇴근이나 퇴근 후에 방문한 지역에서 주거지까지 이동하는 지역적 경계를 보여주는 ‘회식 생활권’으로도 볼 수 있다”며 "여기에는 이동수요와 이동 거리, 택시기사들의 선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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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생활권에 속한 지역은 내부 교통량이 외부 교통량보다 유의미하게 많은 지역을 의미한다. 파란색 클러스터에 속하는 강남역에서 택시를 탄 경우 같은 파란색을 가진 지역 내에서 이동한 경우가 더 많다는 의미다. 실제 김포에 사는 직장인 장호연(40) 씨는 서부 생활권에서 주로 생활한다. 직장 본사가 광화문 인근에 있기 때문에 퇴근 후 모임을 가질 경우 홍대나 마포에서 약속을 주로 잡는다. 강남역은 물론 이태원까지도 잘 가지 않는다. 장 씨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강남역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거기 사는 친구와 만날 때도 웬만하면 홍대 쪽에서 보게 된다”고 말했다.

택시 이동량으로 본 생활권 분석 #한남·흑석·신림동이 동서 경계 #서부는 부천·고양·시흥까지 포함

 직장인 하루 동선은 삼각형 모양

 심야시간 택시 이동으로 본 생활권은 30~40대 한국 직장인의 전형적인 생활패턴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사회학) 교수는 “심야시간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집단은 통상 30~40대 직장인이 많다. 이들의 주로 집→직장→제3의 지역→집으로 이어지는 삼각형 구조로 움직인다. 동서 두 개로 나눠진 거대 생활권에는 각각 주거지와 회사가 많은 업무지구, 유흥지나 퇴근 후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상권,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원가 등이 포함된 제3의 지역이 함께 묶여 있다. 개별 생활권 범위 내에서 사람들은 삼각형을 그리며 최적의 경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출퇴근 시간엔 4개 권역으로 더 잘게 쪼개진다  

 같은 방식으로 오전 출근시간대 택시생활권을 분석한 결과는 심야시간대와는 달랐다. 오전 7시에서 10시까지를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더니 서울은 4개 권역으로 더 잘게 나눠졌다. 심야에는 한 번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출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으로 광역 간 이동을 한 뒤 직장에 가까운 근접 지역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짧은 거리만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호 카카오 모빌리티 디지털경제연구소장은 "사람들이 밀집해 살아가는 수도권 내에서도 이동에 대한 수요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크게 변한다"며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이동수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 서비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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