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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저임금 부담은 그대로…이런 시행령 수정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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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됐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시간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되, 노사 합의로 정한 약정 휴일시간은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고액 연봉자의 최저임금 위반 사태를 막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6개월의 시정 기간도 부여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정안을 재입법 예고해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다.

약정 휴일시간만 제외한 시행령 #대다수 중기·소상공인 해당 안돼 #주휴수당 합리적 개선 검토할 때

결론적으로 국무회의 결론은 기대에 못 미쳤다. 문제의 본질을 짚지도 못했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미봉책일 뿐이다. 약정 유급휴일을 빼기로 했다고는 하나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대다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는 해당 없는 내용이다. 법정 주휴시간(8시간) 외에 4~8시간의 약정 휴일시간을 추가로 두고 있는 곳은 그나마 임금 지급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약정 유급휴일을 둘 형편조차 안 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크게 낙담이 되고 억울한 심경마저 느낀다”는 경영계의 반발이 무리는 아니다.

대기업도 부담을 안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6개월의 자율 시정 기간을 줬다고는 하나 임금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노조의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힘입어 목소리가 높아진 노조가 선뜻 나서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제도적 문제점을 “기업이 알아서 풀어라”며 공을 넘긴 꼴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 논란은 현행 최저임금법상 ‘근로시간’의 규정이 모호했기 때문에 시작됐다. 고용노동부 행정지침은 주휴시간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대법원은 ‘실제 일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현장 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주휴시간을 기준시간에 포함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보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을 압박하는 방향이었다. 어제 나온 정부의 시행령 수정안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이지만, 산업 현장의 부담 완화는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래서야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무색하다. 당장 며칠 뒤 새해부터 두 자릿수의 최저임금 인상이 적용되면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은 ‘2차 충격’을 받게 된다. 정부가 이런 절박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번 기회에 주휴수당 제도 자체를 합리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주휴수당은 과거 장시간 저임 노동이 일반적이던 시절, 노동력 보호와 임금 보충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외국에서도 찾기 힘든 제도인 데다, 주 52시간 근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겐 적용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영세 사업장에서는 제대로 못 받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주휴수당을 없애면 시간당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수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경제노동사회위원회의 의제로 올려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