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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퀸을 잊고 살았지? 다시 타오른 50~60대 팬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16)

“김장은 했니? 아니 아직 못했어, 더 추워지면 할까 해. 그건 그렇고 너 봤니? 뭘? 퀸, 아니 아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최근 여고 동창들과의 대화방에서 한시간여 동안 주고받은 대화다.

주제는 다름 아닌 김장을 했느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느냐다. 개중엔 일찌감치 며느리를 본 친구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도 있고 나처럼 대학생 자녀를 둔 늦깎이도 있다. 평소엔 건강이나 부쩍 심해지는 건망증에 대한 주제로 수다를 떨던 우리였다. 그날따라 부쩍 말이 많아진 우린 지나간 그 시절이 젊고 꽤 눈부셨던 것처럼 착각에 빠져가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광풍처럼 다가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우리의 노래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by 갤럭시탭s3/펜업. [그림 홍미옥]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by 갤럭시탭s3/펜업. [그림 홍미옥]

그것은 위로였다. 광풍처럼 느닷없이 다가와 따뜻하고 달콤한 추억의 이불을 덮어주고 간 한바탕의 위로. 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무려 네 번이나 보았다. 거의 30여년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룹 퀸(Queen)과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다시 만난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잊고 지냈지? 퀸인데, 프레디 머큐리인데, 보헤미안 랩소디인데!

솔직히 말해 첫 회 관람은 연말이면 사라질 통신사의 포인트가 아깝던 찰나에 무료로 보게 된 영화였다. 평일 오후의 영화관엔 내 또래의 중년이 많이 보였다. 스크린으로 만나는 내 젊은 날의 추억은 참으로 반가웠다. 관객 중엔 눈물을 훔치는 아저씨도, 괜스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던 아줌마도 있다. 영화의 완성도나 전문가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엔 내 눈도 촉촉해졌으니까.

그런데 이건 무슨 현상일까?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한참 동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빠지고야 말았다. 아! 저 노래가 들리던 그 거리, 그 노래를 들려주던 커다랗고 둥그스름한 카세트 플레이어, 시간의 테이프를 뒤로 한참 돌리니 예전의 내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그 거리를 걷던 소녀를 다시 만나다

1980년 무렵, 학교로 가는 길목엔 작은 레코드가게가 있었다. 제법 곱상했던 주인아저씨는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주야장천 틀어 대서 우리 사이에선 인기가 많았다. 가게 앞을 지날 때면 한 소절이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걸음을 늦추곤 했다.

당시엔 듣고 싶은 노래를 적어가면 약간의 돈을 받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주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고민 끝에 고른 20여곡을 가지고 레코드가게에 갔다. 종이 위에 빼곡히 적힌 곡 리스트를 보던 아저씨의 말씀. “음~ 아바, 존 바에즈…. 다 좋은데 말야, 내가 추천하나 해줄까? 이건 내가 직접 서울에 가서 어렵게 구해온 백판에 있는 곡인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가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좀처럼 듣기 힘든 곡인데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야, 아! 물론 금지곡이지.”

아무에게나 들려주는 노래는 아니라며 한껏 생색을 내던 주인아저씨, 그렇게 퀸의 노래는 내게 왔고 당연히 그 심오하기까지 했던 노래를 이해할 리 없던 나였지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듣곤 했다. 그 후 30여년이 넘도록 까마득히 잊고 있던 노래가 그 시절 거리와 추억까지 한꺼번에 영화 한 편으로 훅 들어온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남긴 행복한 후유증, ‘퀸청망청’

영화관 로비에서, by 노트8/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영화관 로비에서, by 노트8/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영화의 후유증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영화관도 있다고 하고 유난히 사운드가 좋은 곳도 있다고 했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한껏 고무되고 마음이 젊어져 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진 난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과 입을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집에서는 또 틈만 나면 퀸의 동영상을 찾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예전 같으면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민소매 러닝셔츠나 전신 타이츠 패션에 화들짝 놀래고 한참을 흉보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난 패션을 앞서간다느니 역시 프레디의 감각은 알아줘야 한다느니 하면서 사설을 늘어놓는 중이다. 이율배반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녁준비를 하면서 김치찌개의 보글보글 끓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그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중년의 여자가 온종일 마마~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하면서 엄마 타령(?)이라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지 뭔가 말이다.

40~50대의 악기구매가 영화가 히트하면서부터 부쩍 늘었다는 기사를 읽은 날 아침, 자동으로 뒷방에 내팽개쳤던 기타를 꺼내 먼지를 닦았다. 그야말로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정성껏 기타를 손보았다. 물론 며칠 뒤 기타는 슬그머니 뒷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암만 생각해도 영화 한 편에 이토록 빠져드는 내가 이상하다. 당최 질리지 않는 것도 이상할 노릇이다. 온라인에서도 ‘퀸망진창’ ‘퀸치광이’ ‘내 심장을 할퀸’ ‘퀸생퀸사’라는 표현이 유행인 걸 보면 나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닌 듯싶다. 다행이다.

영화관 로비. [사진 홍미옥]

영화관 로비. [사진 홍미옥]

용기라는 배터리를 잔뜩 충전해주고 간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내게 위로를 주었다면 난 아마 무언가에 위로받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씩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선 따뜻한 추억이나 친근한 음악의 위로를 원하고 있었던 거다.

사실 퀸의 음악과 함께 하던 시절은 야간학습과 대학입시에 시달렸고 최루탄이 난무하고 사회는 날마다 불안하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그 시절이 좋았다며 향수에 젖고 행복해하는 건 왜일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어딘가가 결리고 쑤시고 불편해지는 요즘, 음악으로나마 추억을 소환해 즐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2018년 끝자락은 선물처럼 찾아온 내 젊은 날의 음악과 추억에 기꺼이 빠져들어 지냈다. 퀸 덕분에 프레디 덕분에 음악의 힘 덕분에! 네 번째 관람은 가족과 함께였다. 도무지 음악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과 아들은 나의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요즘 만행(?)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영화가 음악이 뭐기에 마누라가 엄마가 저토록 설레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드라마는 꺼진 지 오래고 집엔 온통 퀸의 노래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아들은 즐거워했고 남편은 아무래도 전염이 된듯했다. ‘이 노래들 다 아는 노래야’라며 신기해하는 아들과 달리 남편은 뒤늦은 후유증이 왔는지 유튜브를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록그룹이지만 유독 아름다운 멜로디와 멤버의 화음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다가왔던 그들의 음악. 그 음악처럼 영화관에서도 신구세대가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광경을 보는 건 아름다운 일이었다. 우리만 해도 식탁에서 전혀 하지 않던 록음악과 퀸에 대한 토론을 벌일 정도였으니 뭐….

이젠 2018 늦가을 광풍처럼 다가왔던 추억 앓이는 이쯤에서 접어 두어야겠다. 마침 영화도 끝을 향해 가는 중이고 방송도 뜸해질 터이니. 눈부시고 아름다웠다고 우기는 젊은 날의 추억은 어쩌면 위로받고 싶은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힘들었을 세상을 견디고 살아온 우리가 모두 챔피언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달까?

앞으로도 살아갈 많은 시간에 위로의 배터리를 잔뜩 충전해 주고 간 보헤미안 랩소디! 땡큐 퀸! 그리고 프레디! 이젠 다시 시작이다. 현실로 돌아온 난 밀린 청소를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키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이것은 무엇? 남편의 하얀 민소매 러닝이다. 아니 이, 이, 이것은 프레디의 그 뭣이냐, 라이브 에이드 공연 패션!? 어쩌나…. 아직은 좀 더 퀸 앓이를 해야만 하나보다 후후후.

오늘의 드로잉팁

드로잉팁 1. [그림 홍미옥]

드로잉팁 1. [그림 홍미옥]

황금돼지해를 맞아 스마트폰 연하장을 만들어 볼까? 요즘은 우편으로 연하장을 보내는 일은 좀 뜸해졌다. 오늘 사용할 그림 앱은 펜 업. 브러시는 세 번째 서예 붓을 사용해서 간단한 스케치와 채색을 한다.

드로잉팁 2. [그림 홍미옥]

드로잉팁 2. [그림 홍미옥]

이번엔 돼지 캐릭터에 색동옷을 입혀본다. 샘플로 나와 있는 컬러를 이용했는데 조금 전 사용한 색은 색상표를 클릭하면 아래에 표시된다.

드로잉팁 3. [그림 홍미옥]

드로잉팁 3. [그림 홍미옥]

사인도 이번엔 낙관을 찍는 기분으로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써주었다. 새해엔 간단하고 쉬운 폰 그림 연하장이 어떨까?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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