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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人] 정치복귀 안한다고? 거꾸로 읽는 유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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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월 15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뒤 미소 짓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뉴스1]

10월 15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뒤 미소 짓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뉴스1]

호칭은 존재를 규정한다.
본인은 스스로 작가라지만, 방송에도 얼굴을 자주 내비친다. 잊을 만할 때면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적잖은 이들은 그를 정치인이라고 부르길 원한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유시민 이사장 얘기다. 희한하게도 그 스스로 “정치를 떠났다”고 주장할수록, 그가 정치판에 점점 깊이 발을 담근다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난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 팟캐스트 #“넘쳐나는 반지성주의 매주 정리” #보수 우위 유튜브 전장 뛰어들어 #“대선 조사 때 내 이름 넣지 말길”

이번에도 그렇다. 발단은 22일 서울 서대문구 추계예술대에서 열린 ‘노무현 재단 2018 회원의 날’ 행사였다. 유 이사장은 “재단이 팟캐스트를 하나 하기로 했다. 진행은 내가 한다”고 말했다. “폼 잡고 방송 하차하겠다고 해놓고선 시사프로에 다시 나갈 수는 없다”면서다. 다음은 행사 당시 사회자와 유 이사장의 문답 중 일부.

처음 공개하는 것 같다.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 비방해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 우리 스스로 얘기할 수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 국가 정책 이슈들 보도하는 것 보면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정리해줘야 할 것 같다.
정치 재개 선언인가.
‘유 아무개, 노무현 재단 이사장 맡아서 밑자락 깐 다음 이제 팟캐스트를 한다는 건 정치복귀 몸풀기하는 거다’는 보도가 나올 것 같다. 특단의 조치 준비 중이다. 나를 넣고 여론조사를 하는데, 여론조사 심의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 ‘여론 조사할 때 넣지 말라는 본인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는 안내문을 보내주는 정도가 법적으로 가능한 최고 형태다.
주식시장에서 유시민 테마주가 뜬다.
그거 다 사기다. 자기들끼리 돈 가지고 장난치는 거다. 그런데 막을 방법이 없더라. 피곤하다. 그만 좀 괴롭히시라. (웃음)

‘유시민의 팟캐스트’는 이달 초 열렸던 노무현재단 이사회 때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내년도 사업 계획을 논의하면서 유 이사장이 이사회 멤버들에게 유튜브를 활용한 팟캐스트 계획을 보고했다고 한다. 노무현 재단 이사인 이광재 여시재 원장은 “내년이면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이기도 해서 정책적인 논쟁이나 토론을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이 뛰어들겠다는 유튜브는 가장 뜨거운 전장(戰場)이다. 기존 언론과 달리 ‘심의 규정’이나 ‘언론 중재’라는 게 없다. 명예훼손 등에 저촉만 안 되면 된다.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기 일쑤다.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정당 관련 유튜브 채널 그래픽 이미지.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정당 관련 유튜브 채널 그래픽 이미지.

특히 현재 유튜브의 정치 지형은 보수 우위다. 이를 의식한 듯 유 이사장도 “유튜브가 대세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다 한 번 정복해볼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이미 현안에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반(半)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 가상화폐가 뜨거웠던 1월, 그는 “전 세계 사기꾼들이 다 모여 있다”는 중앙일보 인터뷰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슈를 촉발하고 논쟁을 끌고 가는 건 전형적인 정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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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보는 이들이 정치권에 적잖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최근 평론가로 활동 중인 정두언 전 의원이다. 그에게 전화로 물었다.

‘정치인 유시민’의 경쟁력이 있나.
국회에 있을 때는 왕싸가지였다. (※두 사람은 17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상 밖으로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워진 계기가 뭐라고 보나.
방송의 힘이다. 그런데 봐라. 안철수도 ‘무릎팍 도사’가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힐링캠프’가 있었다.
왜 유시민이 가장 유력한가.
여권 주류인 친노 중에 유시민 말고 누가 있나. 

여권 내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임명직ㆍ선출직 공무원, 앞으로 내 인생에 없다”고 밝힌 걸 믿는 이들이 있다. 이광재 원장도 그 중 한명으로 “정치 자체가 가진 소모적인 부분을 싫어한다. 글 쓰고 방송하는 등 다른 식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게 본인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만, 결국엔 정치인 유시민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본인이 정치하고 싶지 않은 의지가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 안 한다고 했다가 끌려 나오지 않았나. 당 입장에선 주자가 많을수록 좋다.”

권호ㆍ이병준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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