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계발 금융대란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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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선제적인 금리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플레 압력이 표면화되기 전에 금리를 올려 과잉 유동성의 폐해를 미연에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간 금리조정의 실기(失機)를 거울삼아 한은이 예방적인 금리조정에 나서겠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문제는 금리를 올려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그 불안의 진원지는 그동안 막대한 규모로 커져 버린 가계대출이다. 경기를 살린다며 장기간 저금리체제를 유지해 왔으나 늘어난 시중자금은 기업으로 가는 대신 가계대출만 늘렸다. 그 결과 1분기 말 가계빚이 528조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부동산 담보대출이 약 2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권에선 넘치는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자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에 뛰어들었고, 가계는 싼 금리를 보고 부담없이 돈을 끌어다 쓴 결과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넘나드는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의 출처도 따지고 보면 가계대출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금리가 더 오르면 그동안 싼 이자에 길들여졌던 가계는 빚 부담을 본격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자를 제때 못 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원금을 못 갚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여기다 담보로 잡힌 집값이 떨어지면 금융회사는 대출 회수에 나설 것이다. 이자 부담과 빚 독촉에 짓눌린 사람들이 부동산 처분에 대거 나서면 집값은 더 떨어지고, 금융권에선 부실채권이 쌓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바로 가계발(發) 금융대란이다.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 우선 통화 당국은 세심하게 시장상황을 살펴서 금리조정의 시기와 폭을 결정해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일시에 대출금 회수에 나서지 않도록 선제적인 감독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계 스스로가 금리인상에 따른 위험을 인식하고 부채를 줄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