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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서 노니는 야생 코끼리 떼, 심장이 쿵쾅 뛰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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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호 21면

태국은 코끼리의 나라다. 예부터 코끼리를 신성시해 왕실의 상징으로 삼았다. 코끼리 관광도 성행한다. 코끼리 등에 올라타 정글을 누비거나 코끼리 쇼를 보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현재 태국에 사는 코끼리는 약 3000마리. 그중에서 야생 코끼리는 1000마리가 안 된다고 한다. 태국의 야생 코끼리 가운데 약 300마리가 카오야이(Khao yai) 국립공원에 산다.
카오야이에서 초원을 활보하는 코끼리 떼를 만나고 왔다. 태국 최초의 국립공원은 코끼리뿐 아니라 긴팔원숭이·코뿔새 등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나 봤던 희귀 동물의 낙원이었다. 인간 위주인 국내 동물원과 달리 카오야이는 동물이 주인인 진짜 동물의 왕국이었다.

코끼리는 국내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야생에서 마주한 감격과 비교할 순 없다. 카오야이 국립공원 초원에서 만난 코끼리 가족. 안전요원의 통제에 따라 50~70m 거리에서 봤다. 최승표 기자

코끼리는 국내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야생에서 마주한 감격과 비교할 순 없다. 카오야이 국립공원 초원에서 만난 코끼리 가족. 안전요원의 통제에 따라 50~70m 거리에서 봤다. 최승표 기자

코뿔새 나는 정글

카오야이는 1962년 태국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해발 1300m가 넘는 산이 즐비하고, 면적은 2168㎢에 달한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5배 크기로 태국 4개 주에 걸쳐 있다. 야생동물도 많다. 카오야이 국립공원을 포함한 ‘동파야옌카오야이 숲’에는 포유류 112종, 파충류와 양서류 200종, 조류 392종이 산다.
중요한 건 아시아코끼리·긴팔원숭이 같은 20종이 넘는 멸종위기종이 산다는 사실이다. 2005년 동파야옌카오야이 숲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까닭이다. 아득한 오지 같지만 방콕에서 자동차로 2~3시간 밖에 안 걸린다.

카오야이 국립공원의 밀림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였다. 농팍치 트레일에서 본 거대한 생강나무. 최승표 기자

카오야이 국립공원의 밀림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였다. 농팍치 트레일에서 본 거대한 생강나무. 최승표 기자

지난 10월 들른 국립공원 방문자센터에는 호랑이·긴팔원숭이·코뿔새 등이 박제돼 있었다. 가이드 ‘차’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희귀 동물을 다 볼 수 있나요?” “운이 좋다면요. 부처께 기도했으니 기대해보죠.”
국립공원 직원 ‘능’과 함께 트레킹을 하며 야생동물을 보기로 했다.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지만, 정글 트레킹은 가이드나 국립공원 직원과 함께하길 권한다. 국립공원의 대표 트레일 5개 가운데 3.3㎞ 길이의 농팍치(Nong Pak Chi) 트레일로 향했다. 거머리 방지 양말을 신고 벌레 퇴치제도 잔뜩 뿌렸다. 우기 끝 무렵, 거머리가 신발을 타고 올라와 발목을 물 수 있어서였다.
정글을 걷는 건 쉽지 않았다. 진흙이 질척거렸고 잡목이 엉켜 있었다. 건물 10층 높이의 생강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어른 10명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곰과 코끼리를 마주쳤을 때의 행동요령을 익혔지만, 다행히 쓸 일은 없었다. 대신 진흙에 깊게 팬 코끼리 발자국과 나무줄기에 뚜렷한 곰 발톱 자국은 목격했다. 흔적만 봤는데도 섬뜩했다.

나무에 또렷이 찍힌 흑곰의 발톱 자국. 최승표 기자

나무에 또렷이 찍힌 흑곰의 발톱 자국. 최승표 기자

숲에서는 온갖 새소리가 들렸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 다리에서 만났을 때 13종의 새 소리가 들렸다는데, 최소한 20종은 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헬기가 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차가 소리쳤다. “코뿔새가 다가오는 것 같아요.” 거대한 코뿔새 5~6마리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워낙 순식간이어서 카메라를 꺼낼 틈도 없었다. 코뿔새는 지저귀는 소리도 독특하지만, 집단 비행을 할 때는 유난히 요란하단다.

멀찍이서 바라본 코뿔새. 부리 위쪽이 투구처럼 생긴 오리엔탈 파이드 코뿔새다. 최승표 기자

멀찍이서 바라본 코뿔새. 부리 위쪽이 투구처럼 생긴 오리엔탈 파이드 코뿔새다. 최승표 기자

밀림의 가왕 긴팔원숭이

정글을 빠져나오니 너른 초원이 펼쳐졌다. 작은 연못 주변에 하얀 동물 뼈가 흩어져 있었다. 능은 “약 두 달 전 들개 떼가 사슴 두 마리를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시 트레일을 걷다가 능이 멈춰 섰다. 멀리 무화과나무에 긴팔원숭이가 있다며 우듬지를 가리켰다. 나뭇가지 사이에 웅크려 앉은 흰손긴팔원숭이 한 마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녀석은 이쪽을 불편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나무를 옮겨 다녔다. 약 70m 거리인데도 길쭉한 팔과 하얀 손이 또렷했다.

일반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는 유인원인 흰손긴팔원숭이. 독특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밀림의 가왕'이다. 최승표 기자

일반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는 유인원인 흰손긴팔원숭이. 독특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밀림의 가왕'이다. 최승표 기자

눈에 보이는 건 한 마리였지만, 더 많은 긴팔원숭이 소리가 들렸다. 새 소리를 압도하는 원숭이 노랫소리가 숲 전체에 쩌렁쩌렁했다. 사이렌 소리 같기도 했고, 엄마 찾는 아이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이따금 고음을 낼 때면 귀기(鬼氣)가 느껴졌다. 가이드 차는 “긴팔원숭이는 일반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는 유인원”이라며 “노래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부부가 화음도 맞추는 놀라운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밀림의 가왕(歌王)이라 할 만했다.

코끼리가 누웠던 수풀이 푹 꺼졌다. 아기 코끼리로 추정한다. 최승표 기자

코끼리가 누웠던 수풀이 푹 꺼졌다. 아기 코끼리로 추정한다. 최승표 기자

농팍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초원.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상록수 우거진 밀림 뿐 아니라 이렇게 너른 사바나 지대도 있다. 태국 가족 여행객이 초원을 걷는 모습. 최승표 기자

농팍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초원.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상록수 우거진 밀림 뿐 아니라 이렇게 너른 사바나 지대도 있다. 태국 가족 여행객이 초원을 걷는 모습. 최승표 기자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은 그늘 없는 초원이었다. 어른 키만 한 수풀 곳곳이 푹 꺼져 있었다. 차는 “코끼리가 누웠던 자리”라고 말했다. 정확히 코끼리가 옆으로 드러누운 모양이었다. 주변엔 코끼리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코끼리 떼가 파헤친 황토지대에도 배설물이 많았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염분 보충을 위해 소금기 많은 땅을 찾아다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3시간 넘게 걸었어도 코끼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이트 사파리를 하면서 본 삼발사슴 가족. 카오야이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다. 최승표 기자

나이트 사파리를 하면서 본 삼발사슴 가족. 카오야이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다. 최승표 기자

오후 6시 30분 나이트 사파리 투어에 참가했다. 야생동물은 인파가 적고 기온이 선선한 밤이나 이른 새벽에 주로 활동한다기에 기대가 컸다. 픽업트럭을 타고 공원 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비추는 숲을 응시했다. 가장 많이 만난 동물은 사슴이었다. 가족끼리 키 작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 먹는 모습, 수컷끼리 뿔을 맞대고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공원 주차장에서도 식당 마당에서도 숱하게 마주친 동물이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화려한 뿔을 가진 삼발사슴 수컷. 최승표 기자

화려한 뿔을 가진 삼발사슴 수컷. 최승표 기자

할머니가 인솔하는 코끼리 가족

이튿날 오전 5시 숙소를 나섰다. 코끼리와 코뿔새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공원 전망대에는 탐방객이 많았다. 대부분 새 마니아였다. 망원경이나 대형 카메라 렌즈를 삼각대에 걸고 얌전히 숲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오야이 국립공원이 파타야나 푸껫 같은 태국의 유명 관광지와 다른 점을 전망대에서 발견했다. 외국인보다 태국인이 훨씬 많았다. 공원 곳곳에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이 있었고, 공원 안 캠핑장도 태국인으로 북새통이었다.

전망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현지인의 모습. 여느 관광지와 달리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외국인 관광객보다 태국 사람들이 많다. 최승표 기자

전망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현지인의 모습. 여느 관광지와 달리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외국인 관광객보다 태국 사람들이 많다. 최승표 기자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쳤다. 공원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낙차 150m에 달하는 3단 폭포도 보고, 오색조·댕기물떼새 같은 희귀 조류와 온몸이 새하얀 다람쥐도 봤지만, 야생 코끼리를 한 마리도 못 봐서였다. 가이드 차가 “해 질 녘 코끼리가 자주 출몰하니 희망을 걸어보자”며 “낮에는 정글에 있다가 날이 선선해지면 초원으로 나온다”고 달랬다.

공원에서 가장 큰 헤우나룩 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공원에서 가장 큰 헤우나룩 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연못가에서 한 사진작가를 만났다. 그가 근처 정글에서 코끼리를 봤다며 곧 이쪽으로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렁찬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공원 전체를 사로잡을 만한 큰 소리였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코끼리 출몰 소식을 들은 공원 안전요원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차로 위 언덕에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풀 뜯는 모습이 보였다. 뒤쪽에 꿈틀거리는 회색빛 형체가 더 보였다. 코끼리 가족이 곧 걸어 나왔다. 모두 9마리였다. 코끼리는 풀을 뜯어 등에 얹기도 했고, 긴 코로 서로를 매만지며 장난치기도 했다. 소란 떠는 인간이 성가셨는지 코끼리 가족은 이내 자리를 떴다. 가장 큰 코끼리가 소리를 지르며 무리를 몰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차는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코끼리는 먹이 위치를 잘 아는 할머니가 리더”라고 설명했다.

차로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코끼리 가족. 코끼리는 3대가 함께 생활하는데 할머니가 리더 역할을 맡는다. 최승표 기자

차로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코끼리 가족. 코끼리는 3대가 함께 생활하는데 할머니가 리더 역할을 맡는다. 최승표 기자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처럼 코끼리에 다가가지도 못했고, 언젠가 치앙마이에서처럼 코끼리 거죽을 만지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30분이 5분처럼 짧게 느껴졌다. 카오야이에서 나와 방콕에서 잠드는 순간까지 심장 박동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행정보

태국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화폐는 바트를 쓴다. 1바트 약 34원. 카오야이 국립공원은 태국 방콕에서 약 200㎞,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카오야이 여행상품을 파는 국내 여행사가 없다. 개별 여행이 자신 없다면 영어 가이드가 동행하는 현지 여행상품을 권한다. 국립공원 입장료 어른 400바트(약 1만3600원), 나이트 사파리 500바트. 숙소는 공원 북쪽 팍총 지역에 많다. 이번엔 ‘타메스 밸리 카오야이(Thames valley Khaoyai)’에서 묵었다. 한아세안센터에서 만든 앱 ‘아세안여행’을 받아가자. 날씨·환율·회화 등 쏠쏠한 여행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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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야이(태국)=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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