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검찰 수사로 드러난 암호화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중앙일보

입력

서울 중구의 한 암호화폐거래소 전광판 가상화패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의 한 암호화폐거래소 전광판 가상화패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시스]

암호화폐 투자에 빠진 직장인 오모(31)씨는 출근 후 가장 먼저 업비트 거래소 홈페이지에서 시세를 확인한다. 오씨는 “실시간으로 등락하는 시세에 기분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달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시세가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장조작에 의한 것이란 의혹이 검찰 수사에서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제2부는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업체 A사의 임직원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업체의 전 대표이사 송모(39)씨와 재무이사 남모(42)씨, 퀀트팀장 김모(31)씨 등 3명은 임의로 생성한 회원계정 (ID=8번)에 1221억원 상당의 실물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전산을 조작한 후 암호화폐 거래에 참여해 시장을 교란시키며 1491억원 상당의 대금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개월 동안 4조2000억원 상당의 가장매매와 254조5000억원 상당의 허수주문 제출로 암호화폐 거래가 마치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이른바 암호화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시세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주문을 생성하는 봇(Bot)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했다. 봇 프로그램은 회원 거래상황과 관련하여 일정한 조건 값을 입력하면 그 목적에 따라 자동으로 대량주문을 생성한다. 비트코인 시세가 경쟁업체 거래소의 가격보다 높을 때까지 매수를 반복해 시세를 상승시켜 회원 2만6천여명에게 비트코인 1만1550개를 매도했다.

봇 프로그램은 A사 엔지니어인 퀀트팀장 김모씨가 제작한 것이다. 김 씨의 노트북에는 노트북에서 ‘시장조작’이란 이름의 기획문서도 발견됐다. 문서에는 ‘고객을 꼬시기 위한 주문’ ‘고객을 유인하는 효과를 주어 거래자들의 호가 제출을 촉진하여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준‘ 등의 문구가 등장한다. 김씨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써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실제 시장에서 실현됐다고 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김형록 금융조사제2부장은 ”이들의 목표는 암호화폐의 시세를 올리는 것보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범행 기간에 세계 업비트 거래량 1위를 달성했고 한때 한국 암호화폐 시장을 달군 ’김치 프리미엄 현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홈페이지에는 실시간으로 등락하는 가상화폐의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  [업비트 홈페이지 캡처]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홈페이지에는 실시간으로 등락하는 가상화폐의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 [업비트 홈페이지 캡처]

실제로 거래가 일어나면 거래소는 0.05%의 수수료를 받는다. 김 부장검사는 “이들의 하루 거래금액이 5조원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억 원 상당의 수수료가 발생한다”며 “시장 조작이 없었다면 수수료 이득이 이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거래소가 거래량, 주문 수량 등 시장정보를 조작하고, 회원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회원으로 가장하여 은밀히 거래에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주식시장에서 이러한 가장거래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이 되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되지 않아 일반 형법으로 처벌된다. 검찰은 편취금액이 크고 다수인을 상대로 한 범행이지만 회원들에 대한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점, 현재 인지도가 높은 대형 거래소로서 정상 운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송씨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암호화폐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 업체뿐이 아니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5월에 가상화폐 거래소 3곳 임직원들의 유사형태 범죄를 수사해 11명을 기소했다. 이 거래소들도 유사한 방법으로 잔고를 조작한 차명 계정을 통해 거래에 참여해 회원들의 자산을 편취했다. 또한 취득한 자산을 다른 거래소로 반출해 개인 명의 암호화폐 투자를 해 사기횡령 등의 범행을 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