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핫 이슈] 美 원정출산자 명단 공개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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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 수사 당국의 조사까지 받게 된 해외 원정 출산 문제가 네티즌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정부기관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게시판에는 "나라 망신을 시킨 원정 출산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비난성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땅에 함께 살지 못할 사람들의 신상을 밝혀 심판하자" "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군 면제를 바라거나 특권으로 이용한다는 게 잘못"이라는 의견이 주류다.

특히 원정 출산자의 남편 직업에 의사.군의관.공무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네티즌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정 출산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청와대 게시판 등에는 "되먹지 않은 국가관을 가진 혜택받은 자들과 애국심이라고는 없는 자들의 소행" "원정 출산을 통해 자신들만의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현재의 법을 하루 빨리 폐기하라"(sea393 등)는 글이 올라왔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도층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원정 출산을 한다"며 "이들의 출입국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명단을 공개하고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연루됐다면 국가기강 저해 사범으로 간주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qkrwlsdn 등)는 강성 발언도 나왔다.

많은 네티즌은 "상당수가 자식들의 병역 면제 수단으로 원정 출산을 하고 있다"거나 "국민으로서 의무를 회피하고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무분별한 원정 출산을 규제할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정 출산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반미(反美) 감정까지 촉발하고 있다. ID가 billy인 네티즌은 "그동안 원정 출산에 눈 감고 있던 미국이 이라크 파병을 요청한 시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려는 수단"이라는 논리를 폈다. "미국이 원정 출산을 이용해 한국에 국제적 망신을 주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원정 출산 알선 업체들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검찰이 반려한 것을 놓고 "원정 출산을 한 법조인들부터 조사하라"는 등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거센 비난 속에서도 일부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 교육 및 경제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수립하라"며 원인 규명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오죽했으면 원정 출산까지 했겠나" "경기도 좋지 않고 앞으로 사교육비 등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 것이 뻔하므로 획기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원정 출산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원정 출산자들을 무턱대고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는 옹호론도 만만찮게 나왔다. 이들은 "지옥 같은 입시제도, 심각한 경제.취업난 등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정 출산을 한 산모들의 의도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리 불순하거나 부정적이지 않다"거나 "우리 사회의 불안한 정치 현실과 척박한 사회환경, 붕괴된 공교육 시스템,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그리고 좁은 나라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 온 자신들의 경험을 사랑하는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순수한 생각의 발로"라는 반론도 있었다.

일부는 "즉흥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그릇된 여론몰이를 하지 말고 배타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 세계화를 거론했다. 원정 출산을 둘러싼 네티즌의 논쟁은 우리 사회 갈등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창이 되고 있다.

박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