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올해도 쓰는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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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연말이면 일기를 쓰게 된다. ‘벌써 한 해가 지나갔다’는 푸념과 함께 일 년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기자 2’가 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다른 회사에선 ‘대리’라고 부르는 4년 차가 됐다는 의미다. 사실 ‘기자 1’로서의 생활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기자들은 연차에 따라 선배와 후배로 구분할 뿐, 직급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직급에 따라 호칭과 하는 일이 달라지기도 하는 일반 회사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가짐일 것이다. 정치부 생활을 오래 한 K선배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후배의 눈치를 보게 된다. 선배보다 무서운 게 후배다”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다. 적지만 후배들이 생기면서 ‘혹여라도 그들이 보기에 부끄러울 수 있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다짐을 강하게 한 것도 올해부터였다.

그럼에도 역시나 연말 일기엔 아쉬움이 적힌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 투성이다. 일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후회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지금 아무리 새로운 각오로 후회없게 한 해를 보내자고 다짐해도, 내년 이맘때 비슷한 아쉬움의 일기를 쓰고 있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매년 아쉬움의 일기를 쓰게 되더라도, 그때마다 각별한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게 청춘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남은 후회는 다시 큰 아픔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 가루가 묻은 컵라면을 남기고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청년에 우리가 눈물 흘리는 건, ‘위험의 외주화’라는 단어에 분개해서만은 아니다.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때문에 언제든 삶이 풍비박산 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지키려고, 우리 사회가 최선을 다한 적이 없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 위험 설비 점검을 2인 1조로 하고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겠다는 말들도 나온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해나간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안전사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큰 아픔을 겪고도 뼈를 깎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년 이맘때에도 우리는 똑같은 아쉬움의 일기를 써야 한다. 부모님이 사준 양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청년을 다신 볼 수 없다는 눈물의 일기를 또다시 써야 한다.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