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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브리핑]'우윤근'으로 '십상시 문건' 닮아가는 특감반 사건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 직원의 기강 문제로 시작됐던 ‘특별감찰반’ 논란이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 탄핵의 시작이 됐던 ‘십상시 문건’ 사건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입니다.

당초 “자신의 승진을 위해 경찰에 지인과 연관된 사건의 진척 상황을 알아봤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 특감반 수사관이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위 정보를 보고해 쫓겨났다”고 주장하면서입니다.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청와대를 배경으로 빨간 신호등이 켜져있다. 뉴스1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청와대를 배경으로 빨간 신호등이 켜져있다. 뉴스1

'십상시 문건' 때와 유사한 구조

구조적으로 과거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월 정윤회 씨와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 관련 동향에 대한 이른바 '십상시 문건'을 보고했다가 쫓겨났던 박관천 전 경정의 케이스와 유사한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박 전 경정은 문서 유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상관이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불구속기소 됐습니다. 조 전 비서관은 현재 민주당 현역 의원입니다.

검찰에 출석했던 박관천 전 경정.

검찰에 출석했던 박관천 전 경정.

김 수사관은 지난 14일 일부 언론사에 ‘우윤근 의혹’을 제보했습니다. 제보 내용은 2가지입니다.

①“우 대사가 2009년 사업가인 장모씨에게 1000만원을 받으며 취업 청탁을 받았다. 그러다 총선이 있던 2016년이 돼서야 1000만원을 돌려줬다”

②“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우 대사와 가까운 변호사 A씨에게 수사 무마를 부탁하며 1억2000만원을 건넸는데, 이중 1억원이 우 대사에게 갔다”

김 수사관은 돈을 줬다는 장모씨에게 해당 의혹에 대해 들었다고 했습니다.

'우윤근 등장'에 靑 정면대응

우 대사는 비리 의혹에 대한 보고에도 불구하고 주러 대사로 임명됩니다. 김 수사관은 이에 대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이 감사를 무마했다. 직무를 고의로 유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쫓아낸 이유가 이와 연관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들과의 만찬에서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해달라"고 당부했다왼쪽부터. 우윤근 러시아 대사, 문 대통령, 노영민 중국대사.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들과의 만찬에서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해달라"고 당부했다왼쪽부터. 우윤근 러시아 대사, 문 대통령, 노영민 중국대사. [청와대사진기자단]

우윤근 대사는 문 대통령과 가깝습니다. 한때 초대 비서실장으로도 거론됐던 인물입니다. 이 사건이 자칫 ‘측근 비리 무마’ 의혹으로 튈 경우 정치적 타격이 생길 수 있는 상황입니다.

청와대는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했습니다.

 15일 김의겸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서 ‘김○○’로 표현하던 수사관의 이름을 ‘김태우’로 특정했습니다. 이 브리핑을 계기로 그의 이름은 공개됐습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와 관련한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와 관련한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허위사실을 포함한 명예훼손의 법적 책임은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거 방해해 1000만원 빌려준 것"

우 대사는 김 수사관의 주장이 허위라고 주장합니다.

우 대사는 16일 본지 통화에서 “평소 아는 A 변호사와 장모씨를 만났지만 절대 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나중에 장씨가 유세장에도 계속 나타나 ‘1인 시위를 하겠다’, ‘돈이 없으니 100만원만 달라’는 등 선거를 방해하길래 A 변호사에게 ‘혹시 돈을 받았느냐’고 확인했지만, A 변호사도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며 “2016년 선거에서 패배한 뒤 참모로 활동했던 인사가 장씨에게 차용증을 쓰고 1000만원을 계좌로 빌려주고 증거를 남겼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돈은 받지 않았지만, 계속 괴롭혀서 1000만원을 빌려준 걸로 했다’는 설명입니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차용증 등을 모두 제출했고, 청와대는 이를 근거로 ‘단순 채권ㆍ채무 관계일 뿐 형사적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거를 방해했다고 해도 왜 1000만원을 빌려줬는지에 대한 소명은 다소 부족합니다.

'검찰 불입건' 배경은 사실상 '배달사고'

청와대는 저축은행에서 1억원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검찰 조사에서 불입건 처리됐습니다.

검찰 이미지.

검찰 이미지.

청와대가 김 수사관의 보고가 허위라고 판단한 결정적 근거가 바로 당시 검찰 수사 결과입니다. 당시 검찰은 A변호사가 김 전 회장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확인해 그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그 때도 우 대사에게 돈이 갔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돈의 용처를 확인하기 어려워 사실상 ‘배달사고’로 결론이 났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수사관이 지난해 우 대사 관련 보고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국회 사무총장이던 우 대사에 대한 감찰은 민간인 사찰의 영역으로 판단했다”며 “다만 주러 대사 등으로 거론되던 우 대사의 상황을 감안해 인사검증팀에서 관련 사실을 검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청와대에서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던 관행이 정부 초반까지 있었는데 이를 모두 중단시켰다”고 했습니다.

저축은행 관련 과거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강제 수사권이 없는 청와대로서는 검찰 수사 결과를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당시 수사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만 박근혜 정부 당시 우 대사는 야당 의원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여 유영하 변호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함께 기소된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석에 섰다. 20170523 사진공동취재단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여 유영하 변호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함께 기소된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석에 섰다. 20170523 사진공동취재단

우 대사는 김태우 수사관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야당은 해당 사안에 대한 국정조사 카드로 맞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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