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극복 일 경제 "호황"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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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화 절상과 통상압력, 게다가 시도 때도 없는 노사분규 등 안팎의 악조건으로 우리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 이웃 일본의 경제는 탄탄대로 위를 고속질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일본의 GNP는 지난 73년 (7·9%)이래 최고인 5·7%의 성장을 한 것으로 집계됐고 1인당GNP는 2만3천3백58달러를 기록, 2년째 미국을 앞지르면서 격차를 벌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와 금년상반기에 걸친 「히로히토」전 일왕의 장기간 와병과 사망으로 인한 소비자제 등 자숙분위기로 일시적인 경기침체가 있었지만 지난달 31일로 끝난 88∼89회계 년도 일본의 GNP는 5·7%의 성장을 해 3백71조 엔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6·9%의 성장을 해 일본의 GNP규모가 3백96조 엔에 달할 것으로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향서태) 측은 전망하고 있다.
85년9월 G5회담에서 엔화의 절상에 합의, 당시 1달러에 2백40엔 선이던 엔화는 현재 1백30엔 대를 기록하는 등 절상을 계속, 86년 일본경제는 수출타격 등으로 불황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인 87년 5%의 성장을 하는 등 일본경제는 단기간에 엔고의 타격을 극복하고 활기를 되찾았다. 엔고의 극복과정에서 군살을 뺀 일본경제는 오히려 체질이 강화 됐다. 일본인들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모 선수인 「치요노·후지」 선수에 곧잘 일본경제를 비유한다. 우리 나라 이 만기 선수처럼 탄탄한 근육체질인 「치요노·후지」 선수가 기술과 재치로 덩치가 훨씬 큰 선수들을 물리치는 것이 엔고로 오히려 체질이 강화된 일본경제와 비슷하다는 것.
그러나 엔고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일본이 치른 체질개선을 위한 고통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지난달 29일 방문했던 일본최대의 대형 컴퓨터메이커인 후지쓰 (부사통) 의 누마즈(소율)
공장도 86년 10%의 인원을 감축, 현재 3천5백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공장의 「요시이·구니히코」(길정구인언) 공장장은『대형컴퓨터는 제작 상 사람의 손이 많이 들어 더 이상의 인원감축은 불가능했다』며 『대신 저가품대량생산에서 고 가품 소량생산으로 경영전략을 바꾼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공장에는 매년 3천대정도의 대형컴퓨터를 생산하는데 1대 가격은 평균 1억17천 만엔 이며 최고가품은 45억엔 짜리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감량경영 및 경영전략전환으로 세계최대 컴퓨터메이커인 IBM과의 격차를 86년 8분의1에서 지금은 5분의1까지 오히려 줄여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자랑이었다.
일본경제성장의 또 하나의 비결은 설비투자와 개인소비의 증대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외수, 즉 수출이 일본경제를 주도해 왔지만 87년부터는 내수가 경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엔고가 일본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다. 즉 엔고로 금리가 떨어졌고 때마침 동경 등 주요도시의 땅값이 급등, 빨리 집을 지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주택투자로 이어져 건축경기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15%정도 성장한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개인소비는 지난해 5% 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까지 작은집에서 일 벌레처럼 살아오던 일본인들은 요즘 대형TV·대형냉장고·대형승용차 등 생필품을 고가 품으로 바꾸기에 여념이 없고 주5일 근무가 정착되면서 레저인구가 늘어나는 등 씀씀이가 커졌고 이러한 내수폭발이 바로 일본경제를 성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업체 등 수출기업들의 내수시장공략도 내수폭발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일본경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최고수준인 평균연령 (85년 여 80·48세, 남 74·78세)으로 의료비등 재정부담이 늘어나 정책당국은 고심하고 있다.
또 4월1일부터 시행되는 소비세 (우리의 부가가치세와 비슷)로 물가상승요인이 1·5%생기는 등 장기적으로 인플레문제도 성장저해요인으로 꼽히고있다. 지가폭등도 예사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국제수지 혹자와 이로 인한 통상마찰 문제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85∼86년 국제수지흑자가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이던 것이 현재는 2·5%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일본경제당국자나 경제원로들의 정책자문기관인 마에카와(전천)위원회도 2%미만으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하고있다.
이러한 몇몇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경제의 앞날을 낙관하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고사이·유타카」 이사장은 『일본산업계는 현재 오만인지 자신감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해있다』며 『디자인과 성능이 좋아 제품이 잘 팔리는 데다 노사협조가 잘 돼고 수출이 어려워지면 내수가 되살아나는 등 운도 따르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노사는 물론 정부와 국민 모두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동경=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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