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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외로운 조지' 유전자···거북이 장수 비밀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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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2년 여름, 19개의 화산섬과 암초가 독립적인 생태를 이루고 있어 ‘다윈의 야외실험장’으로 불리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한 마리의 거북이 숨을 거뒀다. 당시 외신은 앞다투어 이 거북의 죽음을 보도하며 이른바 ‘부고란’을 가득 채웠다. 거북의 이름은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 총 13종의 갈라파고스 거북 중 하나인 핀타섬코끼리거북(Chelonoidis Abingdonii)의 마지막 개체였다.

지난 2012년 6월 24일 사망한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는 사망 당시 약 100살로 추정됐다. 과학자들은 외로운 조지와 다른 거대 거북 한 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의 장수의 비밀을 파헤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론썸 조지 (Lonesome George)로 알려진 거대한 갈라파고스 거북이는 2001 년 2 월 5 일 파일 사진에서 푸

지난 2012년 6월 24일 사망한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는 사망 당시 약 100살로 추정됐다. 과학자들은 외로운 조지와 다른 거대 거북 한 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의 장수의 비밀을 파헤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론썸 조지 (Lonesome George)로 알려진 거대한 갈라파고스 거북이는 2001 년 2 월 5 일 파일 사진에서 푸

외로운 조지가 세상을 떠나며 당시까지 11종만 남아있던 갈라파고스 거북은 총 10종으로 줄었다. 지구는 그만큼 외로워졌다. 그러나 이 외에도 한 가지 관심을 끈 것은 외로운 조지를 비롯한 갈라파고스 거북의 ‘나이’였다. 외로운 조지는 사망 당시 약 100살로 추정됐지만, 갈라파고스 거북은 최대 200살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이후 외로운 조지의 신체 조직을 이용해 갈라파고스 거북의 ‘장수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외로운 조지가 남긴 게놈 분석...갈라파고스 거북은 왜 장수할까

사망 약 6년 후인 지난 3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는 외로운 조지의 이름과 함께 그의 유전자가 분석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카를로스 로페즈-오틴 스페인 오비에도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외로운 조지의 유전자를 해독해 거대 거북의 장수 비결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이들이 분석한 거북은 핀타섬코끼리거북(외로운 조지) 외에도 또 다른 거대 거북 중 하나인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을 포함한 두 종류였다. 연구진은 “두 거북이 약 4000만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연구 대상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총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1000km 떨어진 군도로, 총 19개의 화산섬 및 암초가 독립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다윈의 야외 실험장으로도 불린다. 갈라파고스라는 말 자체로 '거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다. [사진 Nature Ecology & Evolution]

갈라파고스 제도는 총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1000km 떨어진 군도로, 총 19개의 화산섬 및 암초가 독립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다윈의 야외 실험장으로도 불린다. 갈라파고스라는 말 자체로 '거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다. [사진 Nature Ecology & Evolution]

연구진은 두 거북의 지놈을 완전히 분석해 포유류와 어류, 조류 그리고 거북을 제외한 다른 파충류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차이점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거북의 수명에 관계하는 ‘IGF1R’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정상적인 정상과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ㆍInsulin-like Growth Factor)’의 하나인 IGF1R은 쥐와 인간의 수명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거북이를 오래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거북, 면역 유전자 ‘사본’ 인간보다 12배 많아...인간과 달리 선천면역계도 발달

연구진은 또 이들 거북이 다른 생물과 비교해 에너지 조절(Energy Regulation)ㆍDNA 복구(DNA Repair)ㆍ종양 억제 및 면역 방어(Tumor Suppression and Immune Defense)와 관련된 유전자의 ‘사본’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포유류는 ‘PFR1’이라고 부르는 면역 반응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사본을 단 하나만 갖고 있지만, 두 거북은 무려 12개의 유전자 사본을 갖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유전자 사본이 많으면 기존보다 해당 기능이 효율적으로 발생하거나, 새로운 기능이 발달할 수 있도록 연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거북은 에너지 조절과 DNA 복구 그리고 항암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사본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특히 PFR1이라고 부르는 유전자 사본의 경우 거대 거북은 12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료제공=Nature Ecologt & Evolution]

거대 거북은 에너지 조절과 DNA 복구 그리고 항암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사본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특히 PFR1이라고 부르는 유전자 사본의 경우 거대 거북은 12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료제공=Nature Ecologt & Evolution]

또 연구진은 “파충류인 거대 거북은 포유류에서 발달한 적응면역계(Adaptive Immunity System)보다 선천면역계(Innate Immune System)를 높여 장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천면역계가 발달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인식하고 이를 파괴하는 ‘세포독성T세포’나 T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자연 살해 세포(NK세포)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항암 유전자 많고, DNA 수리 빠른 거대 거북 

수명이 길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지만, 거대 거북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수도 많았다.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 다수에서 복제수변이(Copy-number Variations)가 일어나 유전자 개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 DNA 복제 과정이나 자외선 같은 외부 요인으로 손상되는 DNA를 수리하는 유전자 역시 강화돼 있었다. 이 외에도 이른바 ‘노화의 지표’로 불리는 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telomere) 손실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수도 늘어나도록 진화했다.

2014년 당시 107살이었던 서울대공원의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 평균 수명은 180~200년으로 알려졌다.[사진제공=서울대공원]

2014년 당시 107살이었던 서울대공원의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 평균 수명은 180~200년으로 알려졌다.[사진제공=서울대공원]

연구를 진행한 로페즈 오틴 교수는 “조지의 유전자 500개를 분석한 결과 노화 특성과 관련된 유전자 6개를 찾았다”며 “노화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아달기사 카콘 미국 예일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과 교수 역시 “외로운 조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며 향후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을 시사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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