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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와 생쇼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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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가 재출간됐다. 다시 읽다 보니 윤직원의 아버지인 윤용규가 화적떼에게 죽는 장면에 이르렀다. 윤직원은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 넘어진 아버지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서 예의 그 유명한 대사를 부르짖는다.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는,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일갈한다.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채만식은 이 부분에 살짝 끼어들어 너스레를 떤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였습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채만식의 너스레와 달리 역시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조선시대 농업사를 공부할 일이 있었다. 몸이 약해서인지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 대부분 까먹었는데, 조선은 대를 이어가면서 부를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기억난다. 화적떼에 비참하게 죽어간 윤용규가 그 직전에는 화적떼를 잡아 달라고 수령에게 달려갔다가 오히려 장독이 오를 만큼 두들겨 맞고 거금 2000냥도 빼앗기게 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조선에서 잘 살 수 있는 길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 세상이니 윤직원이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라고 위대하게 선언한다 해서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웅장해야만 하는 이 절규가 왜 내게는 끔찍한 비명처럼 들리는 것일까? 아마도 며칠 전에 임시 반상회에 참석하게 된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한번 가본 뒤로 반상회는 처음 참석했다. 어디 세상 돌아가는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고 나간 것이었는데, 구경 한 번 멋지게 한 셈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상세한 토론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요는 왜 우리 빌라는 길 건너 아파트의 같은 평수만큼 가격이 오르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참으로 소박한 질문이기는 하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반상회라는 게 귀신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서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다가 끝내 고함을 지르면서 끝나는 것인 줄 미처 몰랐던 나는 허겁지겁 중간에 일어나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도망치는 내 뒤로 "우리도 그 가격을 받지 못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겨"라는 절규가 들렸다. 이크, 말하자면 그 또한 웅장한 절규이자 위대한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채만식 풍으로 이게 나라가 망해 가는 징조인가, 되뇌며 황망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집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켰다. 이번에는 축구대표팀이 가나와 평가전을 한다고 해서 시청 앞이고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고 온통 시뻘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는 라이브쇼, 그러니까 정말 생쇼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했으니 그 밤늦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니겠는가? 토고는 부두교의 주술적 힘으로 16강에 진출한다고 호언한다던데, 우리는 가수들을 총동원한 생쇼로 16강에 진출할 속셈인지도 모른다. 주술과 생쇼가 만나면 누가 이길까?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이긴다. 우리는 정말 대단하니까.

우리만 문제없으면 세상은 태평천하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한 오백 년 사는 동안 우리 유전자에 그런 생각이 각인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축구는 좋아하지만,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월드컵 경기를 다 볼 계획이지만, 생쇼는 정말이지 사양이다. 댄스 가수들 춤추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 사나워 도통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 다들 이 판에 단단히 한몫 챙기자는 속셈이 있으니 그런 생쇼를 하는 모양인데, 다음 반상회에서 절규하지 않고 먹고사는 방법을 좀 토의했으면 좋겠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