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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고영한 영장 청구 … 전직 대법관은 처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검찰이 양승태(70)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61)·고영한(63)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범 적시

이들의 구속 여부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5명 중 한 명이 결정한다. 결과는 6일이나 7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폭풍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이날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자기 사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고, 두 전직 대법관이 임 전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 전 차장 윗선의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2016년 2월,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2017년 5월 법원행정처장직을 수행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임 전 차장 기소장에 담긴 강제징용, 통합진보당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 외에 별건의 추가 재판 개입 혐의가 적시됐다. 박 전 대법관의 경우 청구서가 158쪽, 고 전 대법관은 108쪽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영장 청구서에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강제징용·통진당 해산 재판 등 개입 혐의 … 두 사람 모두 혐의 부인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과정에서 최종 지시자인 양 전 대법원장과 실무를 총괄한 임 전 차장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10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을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났다. 검찰은 이들이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방안과 처리 방향 등을 논의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2015년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따낸 예산 3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각급 법원 법원장들에게 배부하는 과정에도 박 전 대법관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국고손실, 허위공문서작성 혐의 등이 기재됐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한 판사의 비위를 확인하고도 무마했고, 이 과정에서 고 전 대법관이 해당 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관련 재판의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법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혐의도 이번 구속영장에 포함됐다. 수사팀은 최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해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 등을 확보하고 수사를 벌였다. 이 보고서에는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물론 양 전 대법원장의 서명이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일부 하급자 진술과 상당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와 관련해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신속히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속 못지않게 엄정하고 정확히 수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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