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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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하원의원이「윌슨」수상에게 항의했다. 전화를 걸어도 기분 좋게 신호가 떨어지는 일이 없으니 무슨 대책이 없느냐는 것이다.「윌슨」은 자기가 전화를 걸때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 하원의원은 어디 그럼 당신이 한번 걸어 보라고 응수했다. 윌슨」은 웃으면서 말했다.
『TV에서 스포츠 중계를 할 때 한번 걸어 봐요. 그런 일이 있나, 없나…』.
그때만 해도 영국의 전화 사정이 그랬던 모양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좋아진 것이 하나 있다면 전화 시설이다. 가설비가 비싼 것 빼놓고는 흠잡을 일이 별로 없다. 아침에 전화 가설을 신청하면 저녁에 제꺽 달아 준다.
휴대용 전화까지 등장했다. DDD전화는 외딴 섬에서도 어디에나 통화할 수 있다. 전자교환장치가 되어 있는 지역에선 이중수신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통신문명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있다. 오밤중 아무 데나 거리낌없이 전화를 걸어 희롱, 야유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욕설전화를 일삼는 부류도 있다.
아예 전화협박 청부를 받아 직업적으로 그런 일을 해주는 집단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협박전화가 등장한 것은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시절이었다. 민주세력들이「얼굴 없는 저항」의 수단으로 그런 일을 했었다.
지금은 여론개방 시대다.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민주시대의 시민은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민주시대의 시민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하는 일은 가장 비민주적인 사람들을 때때로 본다.
당당한 발언은 앞에 나서서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설득력도 있다. 아무리 옳은 주장도 얼굴을 감추고 뒤에 숨어서, 그것도 욕설과 폭언으로 대신하는 것은 그 말의 도덕성이 없다. 따라서 공감을 살수 없다.
검찰은 앞으로 전화 협박 자들을 단속할 것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상대방의 전화번호가 수신자에게 공개되는 전화장치도 보급되어 있다. 어쨌든 전화폭력은 비열하고 야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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