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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로 시험장 향하는 수험생들…수능 가채점 언제까지 방치하나

중앙일보

입력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201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시험 종료 후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201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시험 종료 후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전업주부인 김모(51‧서울 대치동)씨는 최근 재수생 아들의 수능 가채점 점수를 두고 골머리를 싸맸다. 주말에 치러지는 수시 논술시험 응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수능 가채점 점수가 애매해서다. 아들의 수능 점수는 국어 85점, 수학 80점, 영어는 88점이었다. 아들이 지원한 대학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수능 최저)은 국‧영‧수‧탐구영역 중 3개 영역 등급의 합이 5 이내여야 했다. 절대평가로 치러진 영어가 2등급이라 나머지 과목에서 1등급과 2등급이 하나씩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교육 업체 등급 컷 발표 의지하지만 #일부 수험생 표집조사 결과라 불확실 #학부모?전문가 “정부가 가채점 하길”

하지만 국어·수학 등급 기준이 교육업체별로 달랐다. A업체 기준으로는 국어가 1등급, 수학이 2등급이지만, B업체로는 둘 다 2등급이었다. 실제 등급 컷이 B업체처럼 나온다면 아들이 논술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아도 수능최저를 충족하지 못해 대학에 합격하는 게 불가능했다. 김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하향지원한 대학의 논술시험에 응시하도록 했다. 정부에서 발표한 기준이면 몰라도 업체만 믿고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수능 이후 매주 주말을 이용해 대학별로 논술시험이 치러지는 가운데, 학생들이 자신의 정확한 성적을 모른 채 ‘깜깜이’로 시험장에 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모집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원전략을 잘 세워야 하지만, 대부분 대학별 고사가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이뤄진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수능성적을 모르고 시험에 응시할 수밖에 없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수험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게 사교육 업체에서 내놓는 수능 등급 컷이다. 등급 컷은 수능 점수를 등급으로 구분해 놓은 점수다. 예컨대 국어 1등급 구분점수가 90점(원점수 기준)이라면 90점 이상은 1등급, 89점은 2등급을 받는 식이다. 매해 수능이 끝나면 사교육 업체들은 당일 저녁부터 앞다퉈 등급 컷을 발표한다. 올해는 메가스터디·유웨이중앙교육·이투스교육·종로학원하늘교육 등 8곳에서 수능 예상 등급 컷을 발표했다.

서울 주요 대학들의 201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가 치러진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능동로 건국대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논술고사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주요 대학들의 201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가 치러진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능동로 건국대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논술고사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사교육에서 제공하는 등급 컷이 업체별로 제각각이고,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수험생들이 업체 홈페이지에 올린 수십만 건의 가채점 점수를 통계 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수능 국어영역 1등급 구분점수만 봐도 업체별로 3점 차이가 난다. 8개 업체 중 네 곳은 국어영역 1등급 구분 점수가 86점이라고 예측했지만, 세 곳은 85점이라고 내다봤다. 한 곳은 나머지 업체보다 높은 88점이라고 예상했다. 고3 아들을 둔 고모(54‧서울 역삼동)씨는 “업체마다 내놓는 등급 구분 점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어디를 기준으로 해야 할지 혼란스럽더라.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업체 등급 컷을 믿고 지원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한 사립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0)씨는 “2017학년도 수능 때 사교육 업체 등급 컷을 믿고 논술시험에 응시했다가 수능최저학력기준에 충족하지 못해 탈락한 경험이 있다”며 “정부가 등급 컷 점수를 발표해 신뢰도를 높이거나 성적표가 나온 이후에 시험이 치러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년 이런 불만이 제기되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지난해 가채점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교육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교육부는 2002년, 2003년에 가채점 결과 내놨다가 실제와 차이가 커 문제가 된 이후 예상채점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채점해야 수험생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 진학부장은 “정부가 직접 모든 수험생의 답안지를 가채점해 등급 컷을 발표하면 학생들의 혼란도 적고 입시전략을 짜기도 수월할 것 같은데,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사교육 없앤다고 다양한 대책 내놓으면서 정작 학생‧학부모가 필요로 하는 부분은 사교육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부에서 3일이면 전체 수험생의 가채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1차 채점’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리면 오류가 발생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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