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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버린 변양균의 책, 한국당 지도부선 경제 참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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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

“시간을 내서 한 번 꼭 읽어보세요.”
지난 8월 중순 경 기자와 만난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책 한 권을 추천했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브레인이었던 변 전 장관의 책을 한국당 지도부가 추천하니 어색하다’는 말에 김 총장은 “경제를 살리는 좋은 방안이 있다면 출처가 중요하겠냐, 실행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좋은 방안을 제시했는데도 여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참 비극”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라인 인선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변 전 장관이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의 책은 한국당에서 더 대접을 받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 [오종택 기자]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 [오종택 기자]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J 노믹스)를 비판하며 지난 19일 발표한 ‘i(아이) 노믹스’나, 김용태 총장이 지난해 12월 제시한 ‘패키지딜(package deal, 공공부문 축소ㆍ노동 개혁ㆍ규제 혁파ㆍ사회안전망 재구축)’은 모두 변 전 장관의 책의 뼈대를 이루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변 전 장관과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손발을 맞춘 인연이 있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며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해 10월 낸 『문재인 포퓰리즘』이라는 책에서도 변 전 장관의 책을 언급했다. 그는 “변양균 전 장관은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을 냈는데 우리 경제의 바람직한 진로를 거시적 관점에서 제시한다”며 “변 전 장관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문재인 정권의 초기 정책들은 자원을 만드는 수단은 아예 무시된 채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올리는’ 강압적 방식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출간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케인스식 수요 확대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슘페터식 공급 혁신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위험성도 경고했다. 그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이론적 기반은 유효수요 창출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며 “인위적 임금 상승보다는 저비용 사회로 우리 사회를 구조조정하여 실질적인 가계소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책을 펴서 직접 자원을 배분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가 기업가적 혁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히 한국당 인사들에게 인상을 준 대목은 ‘노동의 자유’(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이다. 변 전 장관은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딜로이트 글로벌’은 한국이 생산성 대비 높은 임금으로 노동 경쟁력은 미국의 60%, 독일의 80%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기업이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되어 청년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단체협상을 통해 임금 인상, 성과급 지급, 복리 후생 확대 등을 주도하고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변 전 장관은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까다로운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정규직 전환보다는 비정규직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일자리가 늘고 기업 투자도 는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변 전 실장은 현 청와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청와대의 정책 방향을 보면 반대로 가고 있다”며 “변 전 실장이 추구하는 개혁 구상은 한국당의 생각과 같다. 문재인 정부 보다 우리가 더 잘 구현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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