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시리아 "이라크 파병 응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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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프랑스가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시한 다국적군 창설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않겠다는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다국적군 파병이 중요한 장벽을 넘게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파병과 재정 지원을 요청했으며, 이어 이번주 중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을 만나 결의안 통과를 조율한다.

◇ 고립 걱정한 프랑스=시라크 대통령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겠다"고 한 것은 다국적군 창설의 청신호라고 BBC는 22일 분석했다.

프랑스는 이라크전 직전인 지난 3월 미국이 안보리에 요구한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러시아.독일 등 다른 반전국가들을 규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프랑스가 최소한 거부권 행사를 포기함에 따라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결의안이 무산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게 됐다. 러시아.독일도 이미 다국적군 창설안에 대해 미국과 협의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영국의 BBC방송은 "러시아.독일이 미국에 대해 협조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나홀로' 반대에 나서면 외교적으로 고립될 것을 프랑스는 우려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파병을 요청했던 터키의 압둘라 굴 외무장관도 22일 "외국 군대의 점령이라는 인식이 줄어들면 파병할 수 있다"며 조건부 파병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이에 앞서 21일 터키에 85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키로 최종 승인했다.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시리아도 유엔이 이라크 재건의 통제권을 인수하고, 미군의 철수 시한이 정해지면 파병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 유엔 역할 인정 여부가 변수=결의안이 통과되려면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15개 이사국 중 최소 9개국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분명한 미국 지지를 표명한 나라는 영국.스페인.불가리아 등 이라크전 참전국 3개국이다.

프랑스가 "이라크 재건에 유엔 역할을 확대하고 이라크인에게 자치권을 넘기는 시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독일.러시아 역시 '유엔 권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프랑스의 요구는 현재로선 실현 불가능하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유엔 역할 확대를 놓고 미.영과 러.독.프 등이 밀고 당기는 협상을 계속할 경우 다른 비상임 이사국들은 입장을 유보하며 결의안 투표가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로이터통신은 "정말 중요한 문제는 결의안 통과가 아니라 국제 사회가 '돈'과 '군대'를 지원할지 여부"라고 전했다.

미국이 이라크 통치.재건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면 결의안이 통과돼도 실제 파병과 재정 지원은 지지부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채병건 기자
사진=리치먼드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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