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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뱃살 나온 남성과 블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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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정하임의 콜라텍 사용설명서(28)

영등포 지하상가를 걸어가면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뉴스에서는 결혼할 젊은이가 없어 나라의 존폐가 걱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 많은 젊은 청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신기하다.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지하상가를 걸어가면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신기하다. [중앙포토]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지하상가를 걸어가면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신기하다. [중앙포토]

모두가 개성이 있어서 키가 큰 사람, 몸이 날씬한 사람, 걸음걸이가 예쁜 사람, 얼굴 모습이 귀여운 사람 등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콜라텍에서 추는 춤도 같은 춤이 없다. 100인 100춤이다. 춤을 배워 온 곳이 다르고 배운 춤에 자신만의 개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춤 기법이 보기 좋고 재미있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춤 기법이 단조롭고 단순하여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있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남자다. 남자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발을 박자를 맞추고 손은 여자를 리드해야 한다. 춤을 운전할 기사여서 여자라는 차를 부드럽게 기교 부리며 운전해야 한다. 차에 탄 여자가 감미로운 운전에 자신의 영혼을 맡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거칠게 운전하고 브레이크나 액셀을 팍팍 밟아 대면 여자들은 초보 운전기사라는 걸 금세 알아채어 하차할 시점만 노리고 있다.

나는 얼마 전 ‘2·4·6’이라는 춤을 배웠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춤은 1자 춤이라고 하여 지르박 6박 블루스 3박 트로트 2박 춤을 추고 있다. 1자 춤은 움직임도 크고 속도도 빨라 힘있게 출 수 있다.

2·4·6은 쿵 짝에서 짝에 왼발을 띠는 춤인데 예전 람바 춤이라고 한다. 춤을 춰 보니 리듬을 잘 타야 멋이 있고 1자 춤보다는 움직임이 크지 않지만 나름 음악의 바닷속으로 빠져들기가 더 좋았다. 움직임이 작고 속도가 느려 나이 든 사람의 관절에도 영향이 없어 보였다. 2·4·6은 혼자 출 수 있어 파트너가 여의치 않을 때는 혼자 추면 좋다.

부킹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팁 받은 손님을 부킹해주려고 부르는 것 같다. 부킹은 남자 손님의 춤 실력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여자를 부킹해 줄 것에만 책임과 의무가 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부킹해서 손을 잡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팁 받은 사람에게 여자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게 해서 한 곳을 추고 퇴짜를 맞든 춤이 맞아 오래 추든 상관이 없다. 여자를 부킹해 주었다는 것에 목적을 두기에 때로는 내 실력을 알면서도 아주 초보인 손님을 엮어주기도 한다.

70이 되어 보이는 남성 실버인데 춤을 못 출 것 같은 외모다. 배가 많이 나온 것을 보니 춤 생각이 떨어졌다. 넉넉한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나는 부킹이 해 주면 예의 차원에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손을 잡아 준다. 나도 올챙이 시절 춤 잘 추는 사람을 소개받아 오늘날 내가 춤을 잘 추기 때문에 배신하지 않고 잡아 준다.

이 남성 실버는 술 한잔하였는지 입에서는 술 냄새까지 풍긴다. 아마 떨리는 마음에 술 한잔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운전면허 시험 볼 때 청심환을 먹고 가기도 했으니까. 내 손은 잡았지만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리듬 박자를 타지 못하는 걸 보니 춤을 배우고 온 게 아니라 춤을 춰 보고 싶은 마음에 온 것 같았다.

춤에 대해서는 자칭 고수라고 생각하는데 복싱에서 급이 다른 선수가 자기보다 상위급 선수를 만나 대처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나는 상대가 아무리 춤을 못 춰도 상대 자존심을 배려해 한 곡은 마치자는 주의다. 그런데 이 실버는 도무지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초보여서 춤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손을 잡고 있는 게 주변 사람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기분이 슬슬 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춤을 배우지 않으셨나 봅니다.” 점잖게 얘기하자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런 경우는 마음이 앞서서 춤을 춰 보고 싶었던 거다.

두 번째 소개받은 실버는 춤을 추기 시작하자 내 몸을 지나치게 터치 했다. 일종의 신호인 셈인데 터치 강도가 세고 횟수가 너무 빈번하여 기분이 안 좋았다. (내용과 관계 없는 사진) [사진 정하임]

두 번째 소개받은 실버는 춤을 추기 시작하자 내 몸을 지나치게 터치 했다. 일종의 신호인 셈인데 터치 강도가 세고 횟수가 너무 빈번하여 기분이 안 좋았다. (내용과 관계 없는 사진) [사진 정하임]

두 번째 소개받은 실버는 60대 후반으로 보이고 키는 그런대로 크고 뱃살이 나오지 않아서 춤은 그런대로 추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잡았다. 춤을 추기 시작하자 이 실버는 내 몸을 지나치게 터치를 했다. 일종의 신호인 셈인데 터치 강도가 세고 횟수가 너무 빈번하여 기분이 안 좋았다.

예를 들어 여자에게 돌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으면 사인만 보내면 된다.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던지 어깨를 가볍게 아주 가볍게 터치하면 되는 데 터치 강도가 세다 보니 나를 툭 툭 치고 밀고 당기는 느낌이 강해서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힘이 너무 강하여 완력으로 잡아당기고 밀고 돌리었다. 불쾌해지면서 이 파트너와 춤이 부담스러워 그만 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절대 여자를 힘으로 당기고 밀면 안 된다. 춤의 매너에서 점수가 제로다. 가볍게 마치 깃털 잡은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하수와 고수의 차이가 느껴진다.

집에 가려고 보관소를 향하는데 부킹이 나를 잡아당긴다. 세 번째 파트너를 소개받았다. 나이는 50대 초반인데 몸이 살이 찐 편이었다. 이 파트너는 내 손을 잡은 순간부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춤을 추었다. 내 얼굴 구석구석 감상하듯이 챙겨 보니 내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표정은 일부러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원래 춤을 추려면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춰야 춤 맛이 제대로 나는데 도저히 음악 속으로 빠져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춤을 멈춰야 할지 타이밍만 잡고 있었다. 적어도 3곡은 춰야 하니까 지르박은 그런대로 하는데 블루스에서 뱃살이 나와서 내 배와 닿아 기분이 별로였다. 빨리 춤을 멈추는 게 피해 가는 방법이라는 생각했다.

오늘은 처음부터 마지막 세 사람과 영혼 없는 춤을 추었다. 장사꾼이 개시를 잘 못 하면 종일 그렇다고 하듯 처음 사람이 만족스럽지 않더니 세 사람 모두 만족스럽지 않아서 오늘은 영혼 없는 춤만 추었다. 재수가 좋지 못했다. 나는 춤을 잘 추는 파트너를 만난 날은 재수 좋은 날이라고 표현한다.

정하임 콜라텍 코치 chi990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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