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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대란에 아찔했던 병원…응급실 2시간 폐쇄되기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소방대원 등이 2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소방대원 등이 2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주말을 삼킨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통신장애는 유수의 대학병원도 피해가지 못했다. 화재 지점에서 2.8km 떨어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물론이고, 7.7km 떨어진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도 ‘먹통’에 빠졌다.

밤새 “OO선생님, ##병동으로 와주세요” 방송

의사‧촬영기사‧청소인력 등 업무용 콜폰이 대부분 KT인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24일 하루종일 의료진을 찾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한 의사는 “무슨 1980년대 병원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각 병동에 비치된 ‘병동용 폰’은 SKT여서 각 과에서는 병동폰을 먼저 빌리기 위해 경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일부 과는 ‘KT 폰 아닌 사람’으로 급하게 당직자를 바꾸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콜폰이 먹통이 되자 응급실‧중환자실‧타과의뢰 등도 모두 내선으로만 가능했고, 각과 치프들이 모여서 연락 가능한 핸드폰번호를 급히 공유하면서 오후부터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몇개의 공용 번호로는 3100여 병상의 세브란스 병원의 콜을 모두 감당할 수 없어 밤새도록 ‘ㅇㅇ선생님’을 찾는 방송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환자들도 잠 못자고, 의사 콜도 늦고.. 컴플레인이 많았다”고 전했다. 소아과에 입원한 어린 환자들은 밤새 못 자고 칭얼대다 아침에 지쳐 잠들기도 했다. 각 과 상황을 총괄하는 치프들은 10개 넘는 구역을 뛰어다니며 밤새 상황을 정리했다고 한다. 평소 당직때는 2~3시간 잠이나마 자던 당직의들도 “잠들면 방송을 못들을까봐” 꼴딱 밤을 새우거나, 병동에 앉아서 쪽잠을 잤다.

초긴장 의료진…일부 교수는 병원에서 대기

서울 한 병원에서 '원내 통신 장애'를 안내하는 화면. [연합뉴스]

서울 한 병원에서 '원내 통신 장애'를 안내하는 화면. [연합뉴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교수들 중에도 ‘KT 이용자’들은 전화가 되지 않아, 환자 상태가 안좋은 몇몇 교수는 직접 병원에 나오기도 했다. 의료원장 윤도흠 교수도 병원에 나와 모든 병동을 일일이 돌아다녔다. ‘인터넷은 안되지만 인트라넷 메일은 되는’ 상황에서, 내부망 메일로밖에 있는 의료진에게 소식을 알리는 일도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인트라넷과 외부망이 완전히 분리돼있는 시스템이라, 그나마 내부망이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전했다.

‘먹통’은 25일 정오까지 약 24시간 이어졌다. 의료진들은 환자 진료에 차질이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방송으로만 부르면 자세한 내용을 못 듣고 ‘1, 2, 3병동에서 동시에 부른다’만 파악이 되니까 우선순위 파악이 안돼 심각한 환자에게 나중에 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냐”며 한 의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환자가 밤에 잘 못자고 컨디션 저하로 상태 나빠질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전자차트도 느려지고 연결 오류가 잦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일은 많고…욕하면서 참고 일했다”고 했다.

혼란에 비해 불평 적었던 24시간

결제 시스템 마비로 편의점과 내부 식당 등도 마비됐다. 병원 내 ATM기는 11시 이후에는 작동이 정지돼 병원 안에 있던 환자 가족들은 현금을 뽑으러 병원 밖으로 나가는 수고를 해야 했다. 주차장 출차 시스템도 카드결제가 안돼, 현금이 있는 차량만 현금을 받고 나머지는 그냥 출차시켰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한 직원은 “주차 비용 손실만 해도 꽤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병원 측은 “다행히 주말이었고, 오전 외래가 끝난 시간부터 통신이 끊겨 그나마 차량이 적었다”며 “평일이었으면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들 기사를 보고 상황을 아셔서, 병원 외부 일로 인한 불편이라 많이 이해해주신 것 같다”고도 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황창규 KT 회장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KT 아현지사에서 거리가 꽤 떨어진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도 상황이 심각했다. 이곳에서는 통신장애 초기 2시간 정도 전산 차트 시스템도 먹통이 돼 응급실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방송이 울려퍼진 것은 신촌 세브란스와 마찬가지였다. 순천향대학교 병원은 부천 병원의 인터넷망을 우회해 전산 문제를 해결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25일 자정쯤 KT 이동기지국 차량이 도착하면서 통신이 복구됐다. 순천향 서울병원도 25일 오후부터는 통신 연결이 원활했다. 두 병원 모두 주말 동안 '전화예약 어려움'을 안내했지만 26일 오전부터 전화예약 시스템도 정상 복구돼 평일 '예약 대란'은 없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 관계자는 "내부망 오류에 대한 매뉴얼은 잘 돼 있었는데, 외부망이 이렇게 완전히 끊기는 상황은 불가항력이었다"며 "앞으로는 이 부분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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