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앞에서 前배우자 욕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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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혼가정의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혼한 부부들에게 '자녀양육 권고문'을 나눠주고 있는 서울가정법원 정상규(34.사진)판사는 "최근의 높은 이혼율을 볼 때 10~20년 후엔 청년 세명 중 하나는 이혼가정의 자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판사가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법원에서 활용되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만든 권고문에는 ▶자녀들 앞에서 이혼한 배우자를 비난하지 말 것▶부모의 재결합에 대해 허황된 희망을 갖게 만들지 말 것▶자녀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이혼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양육.방문 일정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해둘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판사는 또 "자녀들을 너무 야단치지 말라"는 조언도 했다. 부모의 이혼이 없었더라면 더 잘할 수도 있었겠다는 배려를 하라는 것.

또 그는 "전 배우자가 이혼시 합의한 양육비 지급이나 면접교섭권 등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재판을 청구해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을 것"도 강조했다. 자녀 양육조건이 열악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법의 보호장치를 활용하라는 뜻이다. 또 "현재 법에는 자녀를 제대로 만나주지 않는 부모를 제재하는 방법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판사는 이와 함께 "이혼가정의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이제 이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대신 자녀들이 함께 살지 않는 부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나쁜 생각을 갖고 있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돼야 한다는 것. 또 "이혼한 부모가 서로 사이가 좋고, 자녀들과 새 부모와도 사이가 좋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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