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포용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는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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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저소득층을 끌어안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포용국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고 있다. 정책 당국으로선 참으로 민망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11년래 최악인 올 3분기 소득 격차는 #소득주도 성장이 받은 냉정한 성적표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은 소득 하위 20% 가구 평균소득의 5.52배(5분위 배율)였다. 3분기 기준으로는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나쁜 수치다. ‘재정 중독’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나랏돈을 쏟아부었지만 소득 분배를 개선하는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분배 쇼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소득 불평등이 악화한 건 저소득층 소득이 줄어서다. 소득 하위 20%의 3분기 소득은 1년 전보다 7.0% 줄었다. 3분기 연속 감소세다. 저소득층 벌이가 쪼그라든 이유는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초래한 참담한 정책 실패였다. 올해 1∼10월 늘어난 취업자는 9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2만8000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특히 저소득층이 주로 일하는 취약 근로자의 고용지표가 나빴다. 도소매·숙박음식업 취업자와 임시직·일용직이 많이 줄었다. 반면 좋은 일자리가 많은 상용직 취업자는 올해 3분기 매달 20만~30만 명 늘었고, 청와대는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했다. 일자리의 질조차 따질 여유가 없는 취약계층은 임시직·일용직에서 밀려나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일자리의 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일자리 자체가 늘어나는 게 먼저다. 한데 문재인 정부는 새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만 주력했다. 최저임금을 다락같이 올렸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도록 압박했으며, 근로시간을 단축했다. 일련의 친노조 정책은 기존 일자리의 질을 높였지만 새 일자리를 늘리지 못했을 뿐더러 있는 일자리도 날아가게 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소득 불평등 악화라는 냉정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도 10년 만의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소득 불평등이 나빠졌다. 당시 청와대는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통계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필요하고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번엔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최대한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현재의 정책 기조에는 “변화 없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그제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한국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올해 들어 악화한 고용 대란이 2020년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한국 경제, 이대로는 안 된다. 일자리를 앗긴 취약 근로계층도, 머나먼 나라 밖의 연구기관도 다 아는 사실을 우리 정부만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