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예편·신병 비관 자살 가능성|정병주씨 죽음…원인과 의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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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12」당시 특전 사령관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 군부 세력에 의해 강제 예편 된 뒤 실의의 나날을 보내 온 것으로 알려진 정병주 전 육군 소장(61)이 4일 오후 서울 교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과 더불어 정확한 사인 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일단 정씨가 12·12 당시 입은 왼팔의 총상으로 계속 불편을 겪어 왔으며 30여 년간 앓아 온 지병인 당뇨병이 전역 후에는 더욱 악화되었고 최근에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셔 온 점 등으로 미뤄 신병 등을 비관한 자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정씨가 자신의 집을 담보로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었으나 친척의 사업실패로 집을 날리게 되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크게 시달려 왔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은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정씨의 죽음에는 1백39일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지 않았고「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교리에 위배되는 자살을 했을까」하는 점 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따르는 것이다.
◇우울증 세=정씨는 지난해 10월16일 가출하기 전까지 겉으로는 쾌활해 보였으나 내심 심한 우울증 세에 시달려 왔고 이 같은 증세는「10·26」이 일어난 10월부터 자신이 예편 당한 1월 사이에 특히 심했다는 것.
정씨의 이 같은 우울증 세는 먼저 12·12당시 자신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부하들에게 총질을 당해 왼팔을 부상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당시 36)이 사망했다는 사실 등 평생을 바쳐 온 군에 대한 배신감과 부하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씨는 가끔씩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교외를 혼자 산책하며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곤 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또 80년 1월 강제예편 당한 뒤 가급적 사람들과 만나기를 기피해 왔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84년 2월에는 카톨릭에 귀의, 세례와 견진 성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정씨의 이 같은 우울증 세는 경제적인 이유로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말이다
평소「군복을 벗는 날이 인생 퇴직의 날」임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전역 후 다른 직장을 마다한 채「직업군인의 명예」를 고집, 연금만으로 살아온 정씨에게 날로 기우는 가세는 더욱 정씨를 우울하게 했고 최근에는 담보를 잘못 서 집까지 날리게 되어 고민해 왔다고 한다. 명동성당에 나갈 때도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골프를 매우 좋아했으나 돈이 없어 친구들이 차로 데리러 올 때야 한번씩 갈 수 있는 등 정상적으로 제대했을 경우와는 천양지차의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정씨에게는 큰 고통이었다는 것이다.
◇신병=정씨는 12월13일 새벽 자신의 사무실에서 M16을 쏘며 침입한 무장군인들에게 왼팔을 관통 당했다.
이 때문에 정씨는 과다출혈 쇼크를 일으켜 국군통합 병원으로 후송,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뒤 불구는 면했으나 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정씨는 또 강제전역을 당한 뒤 술을 폭음하기 시작해 30년 동안 앓아 왔던 당뇨병이 한때 크게 악화되기도 했었다.
을지병원 김응진 내과 과장(73·당뇨 전문의)은『정씨는 6년 전부터 2개월에 한번씩 당뇨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러 식이요법·인슐린 주사 등의 처방을 받아 왔고 최근에는 병세가 크게 호전됐으며 신병 비관만으로 자살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협박전화=육사 9기인 정씨는 특전사령관 시절 전두환·노태우·정호용·박희도씨 등을 자신의 직속부하로 두고 각별히 아꼈다는 것.
그러나 이들이 대부분 12·12사태의 주역으로서 자신을 배반한데 대해 정씨는 큰 충격을 당했고 이 때문에 5공에 대해선 큰 원한을 품어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씨는 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진기 전 헌병 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12·12를「하극상」으로 규정하며 12·12 논쟁의 불씨를 던지기도 했었고 기자회견 뒤에는『입 다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도 받아 왔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정씨는 또 새마을 비리 등 5공 비리 부분에 대해서 매우 강하게 비난해 왔고 지난해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군에 대한 비판여론이 대두되는데 대해『5공이 군의 명예마저 망가뜨렸다』고 분개해 왔다는 것이다.
◇신자의 교리위배=카톨릭에 귀의, 독실한 신앙을 다져 가던 정씨가 교리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세례명이「요아킴」인 정씨는 매주일 부인과 함께 명동성당에 나가 미사를 보는 것 외에도 성당 내 사회복지 위원회 사 목으로 있으면서 지난 3년간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활동을 하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유서=정씨가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은 것도 의문중의 하나. 정씨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는 소주병 3개만이 남아 있을 뿐 자살로 단정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고 집에도 자살을 추측할 만한 글이나 단서가 없다.
◇실종의혹=정씨가 실종되기 전까지도『모종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해온 점은 단순히 자살로만 돌려버리기엔 왠지 석연 찬은 뒷맛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또 가족들이 1백39일이 되도록 실종 신고조차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밖에도 숨진 정씨가 발견된 곳이 철조망이 쳐 있고 지난해까지 군부대 1개소대가 주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군 작전 지역 안이어서『왜 하필 정씨가 군 작전 지역인 곳을 찾아갔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김종혁·김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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