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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조에 밀린 교통공사, 지하철 무인화도 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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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교통공사가 ‘무인화 정책 포기, 5급 근속자의 4급 승진’ 등 그간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요구해 온 사안을 대부분 구두합의해 준 정황이 확인됐다.

공식 노사합의서에는 없는 내용 #“해고자 구제, 5급 승진 구두합의” #노조 ‘특별합의서 해설’로 설명 #사측 “노조의 자의적 해석일 뿐”

중앙일보는 서울교통공사와 서울교통공사노조(민주노총 산하)가 지난 9월 21일 체결한 ‘노사특별합의서’와 이 합의서에 대해 노조가 같은 날 발표한 ‘노사특별합의서 해설’을 함께 입수했다. 해설서는 선언적 표현들로 이뤄진 합의서 5개 항목에 대해 노조가 각각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가 담겼다.

합의서는 첫 항목에서 ‘노사는 전자동 운전·스마트스테이션 사업과 관련해 시민단체·학계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고, 결과는 반영한다’고 돼 있다. 노조는 해설서에서 이를 ‘무인화 정책을 철회시킨 가장 큰 성과’라고 소개했다. 해설서는 ‘서울시와 시의회, 김태호 사장이 투쟁 과정에서 무인화 철회를 수차례 공언했으며, (노조가)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무인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사 합의서’에 대한 노조의 해설

서울교통공사 ‘노사 합의서’에 대한 노조의 해설

합의서는 두 번째 항목으로 ‘18년 차 이상 된 5급 직원의 승진에 대해 합리적 방안을 찾는다’고 돼 있다. 노조는 해설서에서 이를 ‘구두약속을 정리한 것’이라며 ‘사측이 우롱해 온 4급대우 신설이 아닌 4급 승진이란 것을 명확히 확인했다’고 적었다. 서울교통공사는 2017년 5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통합 과정에서 과거에 없던 근속승진을 도입했다. 지난 4월 들어선 노조 집행부가 장기근속자(3180여 명) 특별승진을 요구하자 공사는 이를 거부해 왔다. 노조는 이를 문제 삼아 지난 6월 11일부터 서울광장에서 농성을 벌여 왔다.

합의서에는 노사가 크게 대립해 온 ‘7급보 직원의 직무역량평가 연내 실시’도 포함됐다. 노사 양측은 지난 3월 7급보의 7급 승진을 위해 연 1회 시험을 실시하자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7월 이미 한 차례 승진 시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노조는 ‘100% 합격’을 요구하며 조합원들을 상대로 이 시험에 응시하지 말 것을 독려했고, 미응시자 수백 명이 7급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합격률이 약 92%에 이르자 노조는 이들 미승진자를 위해 연내 추가 시험 실시를 요구해 왔고, 공사 측은 줄곧 반대해 왔으나 갑자기 이를 수용했다.

마지막 5번 조항도 합의서와 해설서의 내용 차이가 크다. 합의서는 ‘상생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동 노력한다’고만 씌어 있다. 그러나 해설서는 이를 ‘노조 활동 해고자와 중징계자에 대한 구제를 위해 노사합의서를 9월 27일 별도로 체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텨 온 이들 요구사항은 지난 9월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농성 천막을 다녀간 이후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타결에 이르렀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교통공사 거대노조의 내로남불’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박원순 9월14일 교통공사 노조 농성장 방문 … 사측, 9월21일 노조 요구 수용 

이 자료에서 사측은 ‘노조 요구는 노사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사항이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교통공사가 임이자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도 ‘기존 노사합의서에 따라 7급 전환 시험은 2019년 하반기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사회에서 고용세습 진상규명을 주장했다가 관철되지 않자 사퇴한 박윤배 전 교통공사 사외이사는 “시장과 노조 집행부 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농성장을 다녀갔다는 사실과, 그 이후 줄곧 반대해 오던 경영진이 노사합의에 전격 이르렀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사합의서가 나온 지 1주일 뒤인 지난 9월 28일 열린 서울교통공사 이사회에선 갑자기 전격 합의에 이른 협상 과정과 결과가 상세히 보고되지 않았다. 박 전 이사에 따르면 당시 회의록에는 한 이사가 “(노사합의서에 대한) 세부 합의가 진행 중이냐”고 묻자 사측 관계자는 “별도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을 피했다.

이 같은 노조 해설서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합의서 발표 날 노조가 해설서를 같이 내놨는데, 사측이 해설서 내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면 해설서 내용대로 구두합의를 해줬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측은 “노사 간 합의를 하면 노조는 의례적으로 해설서를 만들어 노조원에게 뿌려 왔다”며 “합의 내용은 합의서 문구 그대로만 받아들여야 하고, 해설서는 노조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설서 내용을 경영진과 합의된 것으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무인화 포기에 대해선 “회사 차원에서 지하철 무인화를 시행한 적도,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면서 “노조가 실체가 없는 내용을 강조하며 시선을 끌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해설서에 등장하는 ‘구두합의를 정리한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공사 측은 “합의 과정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노조 측이 합의라고 해석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측은 또 “해설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사와 노조가 다툰 사례는 없다”며 “노조의 해설서에 대해 공사 측은 아무런 의미 부여도, 어떤 반응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박형수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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