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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Mr. 밀리터리] 비핵화 대상 아니라는 북 미사일, 우리에겐 치명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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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 분석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북한의 숨겨진 단·중거리 미사일 기지 문제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3일 트윗에서 “언급된 장소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북한이 크게 기만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대해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한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은 비핵화의 핵심이고, 우리에게 치명적인 무기임은 틀림없다.

핵무기엔 탄도미사일이 필수 #리비아도 농축시설·미사일 제거 #북한 단·중거리 미사일 우리 겨냥 #핵 장착 북 노동미사일, 속수무책 #트럼프, 미 본토 닿는 ICBM에 관심 #북 미사일, 비핵화에 포함시켜야

1945년 8월 6일 미국이 맨해튼계획으로 개발한 우라늄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에 실어와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3일 뒤에는 플루토늄으로 만든 원폭 ‘팻맨’을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다. 지구 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된 두 발의 원폭으로 4만∼7만5000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해 말까지 최대 24만 명이 사망했다. 도시는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일본은 항복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원폭 투하는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이 원폭을 IL-28 폭격기에 실어서 휴전선을 넘는 순간 우리 군의 대공미사일에 요격될 가능성이 99.99%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땐 이를 운반할 탄도미사일이 필수다. 2004년 리비아가 비핵화를 이행할 때도 우라늄 농축시설과 함께 탄도미사일까지 제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한 비핵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포함돼 있다. 미국 입장에선 미 본토까지 날아올 수 있는 탄도미사일이 걱정이어서다. 그래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하는 동창리 발사장과 ICBM용 신형엔진 연소 실험시설 등을 폐기하겠다고 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해체했다. 하지만 단·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이런 미사일은 하와이나 괌까지도 날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한·미 정부 당국이 북한의 거의 모든 미사일 기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데다 유사시에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작전계획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은 우리를 겨냥하고 있어서다. 일본도 사정권에 포함된다.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은 독사(사거리 120∼170㎞)·스커드 계열(340∼900㎞)·노동미사일(1300㎞) 등이고, 나머진 장거리다. 북한은 미사일을 사거리와 목적에 따라 전술·작전·전략지대 등 3개의 벨트로 나누어 배치해두고 있다. 전술 벨트는 평양~원산선 이남으로 독사와 스커드 미사일을 배치했다. 작전 벨트는 개마고원 이남 지역으로 노동미사일이 있다. 그 북쪽인 전략 벨트에는 무수단·화성-12형 이상 장거리 전략미사일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은 중국 국경에 가까운 지하시설에 배치했다. 미국이 북한의 ICBM 기지를 폭격하려면 중국 국경까지 날아가야 하는데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 큰 부담이다.

북한은 2012년 4월 15일 개최한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사일 부대를 처음 공개했다. 이른바 ‘전략로켓군’이다. 과거 북한 미사일부대는 사단급이었는데 이때부터 육·해·공군과 별도의 군을 창설한 것이다. 북한은 이를 2014년 전략군으로 명칭을 단순화했다. 러시아나 중국과 비슷한 구조다. 전략군사령부는 처음엔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에 뒀다가 평양 만경대 구역으로 이전했다. 현재 사령관은 김락겸 대장이다. 전략군에는 3개의 사단이 있다. 제1미사일 사단은 600여발의 스커드 미사일로 구성된 6개 대대로 64개의 발사대를 14개 기지에 분산해두고 있다고 한다. 주로 평양 이남에 있다. 제2사단은 200여발의 노동미사일 등을 8개 기지에서 운영한다. 제3사단은 미국을 겨냥해 무수단 미사일(4000㎞)로부터 화성-15(1만3000㎞)까지 운영한다. 미국은 제3사단에 관심이 있고, 우리는 1·2사단을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

CSIS가 공개한 황해북도 곡산군 삭간몰 기지는 1사단에 속해 있는데 스커드 미사일이 주로 배치돼 있다. 북한이 보유한 스커드 계열은 대부분 재래식 또는 화학 탄두를 장착하고 있다. 유사시 개전 초기에 대부분 남한을 향해 쏜다. 하루에도 50∼100발씩을 발사할 것으로 군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재래식 탄두로는 전세를 뒤집을 수준은 아니지만, 화학탄두를 장착해 발사하면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국방부는 서울 등 수도권에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을 집중적으로 배치해두고 있다. 북한 전략군의 약점은 미사일은 1000여발이지만, 이를 발사하는 발사대는 200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한·미는 공군과 미사일로 북한 미사일 발사대와 동굴기지를 정밀타격해 남은 미사일을 모두 사용할 수 없도록 제거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북한이 평양 이북 작전 벨트에 있는 노동미사일에 핵탄두를 달아 삭간몰과 같이 휴전선에 비교적 가까운 기지에 전진 배치하는 경우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행태가 바뀌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중·장거리 미사일을 80도 이상 고각으로 발사해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시험을 여러 차례 실시했다. 같은 방식으로 핵탄두 장착 노동미사일을 삭간몰과 같은 전술 벨트에서 수도권을 향해 고각으로 쏘면 현재 우리 능력으론 방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각 발사된 노동미사일은 마하 9∼12 속도를 유지하면서 고도 500㎞까지 솟았다가 갑자기 낙하한다. 이럴 경우 수도권에 배치된 구형 패트리엇으로는 요격할 수 없어 속수무책이다. 특히 노동미사일은 북한이 보유한 탄도미사일 가운데 탄두가 가장 커 핵탄두를 장착하기에 유리하다.

북한 노동미사일은 ICBM(마하 20 이상)처럼 빠르지 않아 대기권 재진입에도 문제가 없다. 언제든 사용 가능한 미사일이다. 또 파괴력이 큰 핵탄두를 장착할 땐 미사일의 정확도가 높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국방부는 노동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신형 패트리엇인 Pac-3 MSE를 올해 초 도입하기로 했고, 미국은 지난 9월 이 요격미사일 64발의 한국 판매를 승인했다. 하지만 우리 군에 배치되려면 몇 년 더 걸린다. 이와 함께 고각 발사된 노동미사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려면 국내 개발된 철매-2와 최신형 패트리엇, 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연동해 고도에 따라 축차적으로 요격해야 한다. 그러나 THAAD는 수도권에서 먼 경북 성주에 배치돼 있고, 철매-2는 아직 생산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을 비핵화 대상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각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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