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공사, 환경 해쳤다 보기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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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현장. 이 터널공사(13.28km)는 2003년 10월 소송이 제기돼 세 차례 중단됐다가 지난해 12월 재개됐다. 송봉근 기자

대법원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2일 천성산 일대 사찰과 시민단체에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낸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 사건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터널 공사로 신청인의 환경이익이 침해될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결정으로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됐다. 2002년 여름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이다.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대로 터널 공사가 늦어지면서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대구~부산)의 완공이 1년 이상 지연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이로 인한 손실이 2조원 안팎이라고 주장한다.

천성산 터널 논란은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사패산 터널과 마찬가지로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핵심은 터널을 뚫으면 그 위에 있는 습지의 물이 빠져나가 생태계에 영향을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조사를 벌여, 터널 공사는 습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조사가 잘못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초 지율 스님이 100일간 단식해 공동 재조사가 실시됐지만 정부와 환경단체의 입장이 갈려 결론을 내지 못했다. 환경단체는 지금도 지하수가 유출될 것이라며 천성산 계곡의 수위 변화를 조사하고 있다.

대법원은 환경단체의 이런 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소위 '도롱뇽 소송'으로 불린 이 건을 대법원이 기각한 것도 환경파괴 논란에 있어 실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는 점도 감안됐다. 3월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과도 비슷하다. 당시 대법원은 환경보전도 중요하지만 상당한 예산을 투자한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이날 결정에서 환경단체의 책임 있는 활동을 주문했다. 피해를 입증할 수 없는 개인이나 자연물인 도롱뇽이 소송 당사자가 돼 국가의 개발까지 막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환경권을 넘어선 것이라고 본 것.

환경단체는 그동안 경부고속철도 노선 재검토나 사패산 우회도로 건설을 요구하면서도 또 다른 환경파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시했다. 지율 스님은 자신이 기거하는 천성산 내원사가 계곡과 습지를 훼손해 온 점은 무시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사전 예방하고 조정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정부 '공공 갈등 관리법안'을 지난해 5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제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또다시 불거질 것이다. 그때마다 시간을 끌며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남는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nvirep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가처분신청이란=손해배상 청구 등 본소송을 제기해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사안이 급박해 법원에 상대방의 법률행위를 우선 금지해 달라고 제기하는 것이다.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비롯해 채무자가 동산.부동산 등의 처분을 못하도록 하는 경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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