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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저녁 식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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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한 면에 13명씩, 총 39명이 앉을 수 있는 삼각형의 커다란 식탁입니다. 실제 크기의 이 식탁엔 초대받은 이의 이름을 금실 자수로 새긴 식탁보 위에 도자기 접시가 올랐습니다. 접시와 식탁보는 자리 주인의 역사적 배경과 업적에 따라 다르게 디자인됐습니다.

정성껏 만든 이 식탁에 초대된 이들의 면면을 볼까요? 적장의 목을 벤 구약성서의 유디트,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가 삼각 식탁의 첫 번째 면, 여성이라면 누드화의 모델로나 존재하던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당당하게 여성 화가로 이름을 남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이 두 번째 면에서 빛나는 이름입니다. 시대순으로 이어지는 세 번째 식탁엔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미국 미술가 조지아 오키프의 자리가 있습니다.

주디 시카고, 디너 파티, 1974~79, 1463x1463㎝, 브루클린 미술관.

주디 시카고, 디너 파티, 1974~79, 1463x1463㎝, 브루클린 미술관.

네, 눈치채셨겠지만 전부 여자들입니다. 13명이 일렬로 앉은 식탁은 미술에서 익숙한 이미지입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제목으로 숱하게 그려졌습니다. 어느 여자들이 차렸을 저녁상이지만, 참석한 사람 중에도, 그린 사람 중에도 여자는 없는 바로 그 주제입니다. 대형 설치작품 ‘디너 파티’는 바로 그 ‘최후의 만찬’의 여성 버전입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초대하지도 않았던 위대한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도예와 자수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거리입니다. 회화나 조각에 비해, 이름 없는 여성들의 소일거리인 양 하찮게 취급돼 온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에겐 오래도록 자리가 없었습니다. 식탁의 주인공들뿐만이 아닙니다. ‘디너 파티’ 자체도 완성된 지 28년 만에야 비로소 미술관에 놓일 자리를 찾았습니다. 2007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 상설 전시작으로 들어갔습니다.

최근의 국내 뉴스를 봅니다. 채용에서 점수 조작으로 대놓고 여성 지원자들을 차별했던 공사 사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동안 공공연히 여자들의 의자를 빼앗았던 일에 이제 범죄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다음 달이면 끝날 2018년의 뉴스를 꼽는다면,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낸 국내외의 미투 피해자들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제2의 ‘디너 파티’를 만든다면 이들 또한 초대될 자격이 있습니다. 달라진 세상의 ‘저녁 식탁’이 궁금해집니다.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