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김영남·메구미 가족 미묘한 '방북' 입장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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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피랍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 등 일본 내 납치피해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김영남씨 가족이 지난달 31일 니가타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흘간 김씨의 모친 최계월(78)씨와 누나 김영자(48)씨의 일정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북한에 납치된 아들 영남씨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메구미의 모친 사키에(早紀江.70)와 처음으로 상봉한 이후 국회에 나가 참고인 의견 진술을 하고 납치문제에 적극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식사도 같이 했다.

메구미가 납치됐던 니가타현에 가는 '지방 일정'까지 해내야 했다. 늘 수십 명의 취재진이 달라붙었고 출연시키려는 방송국 간 다툼도 대단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몸이 편치 않은 최씨는 메구미의 납치현장을 둘러보는 사흘째 일정을 "눈이 핑핑 돈다"며 취소했다.

이는 납치문제라면 만사 젖혀두고 달려드는 일본 사회의 현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들과 딸을 북한에 납치당해 수십 년간 마음고생을 겪어 온 이들 한국과 일본의 '사돈' 간 만남은 극적일 수밖에 없다.

일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납치피해자 가족 간 공조가 납치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납치문제에 관한 한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월 중순 메구미의 부친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보여 준 한국 정부의 싸늘한 응대를 일 정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김씨 가족의 방일 일정을 성대하게 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번 김씨 가족의 방일은 한국과 일본 간에는 정부 차원뿐 아니라 납치 피해자 가족 간에도 명백한 의견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김씨 가족은 방일 기간 내내 "영남이를 볼 수만 있다면 북한에라도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메구미 가족들은 김씨 가족에게 "북한이 '만나러 오라'고 한다고 덜컥 응했다간 북한의 의도에 말린다. 신중하게 대처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키에는 "2002년 말 외손녀인 혜경이를 만나러 북한에 오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안 갔다"는 설명까지 했다. "먼저 납치 피해자를 일본과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김씨 가족은 "참고하겠다"고만 했을 뿐 끝내 일본 피랍자 가족들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슴에 맺힌 한은 같지만 그를 푸는 방식은 다르고 어렵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준다. 동시에 이 같은 혼선을 즐기는 것은 결국 납치 당사자 북한이라는 점이 안타깝고 분하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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