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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에 131억 히어로즈 삼킨 '봉이 이장석'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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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이장석. [연합뉴스]

이장석. [연합뉴스]

그는 프랑스의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사업가였다. 2007년, 41세의 야심만만한 이 사업가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한다. 직원은 단 2명. 돈이 될 만한 일을 찾아 해외 광산과 원목 개발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그러던 어느 날 이 사업가는 ‘프로야구’라는 새로운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2007년 10월 현대 유니콘스가 문을 닫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새로운 야구단 주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였다. 야구단의 새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프로야구는 8개 구단에서 7개로 줄어들 위기였다. 더구나 현대 유니콘스가 선수들의 연봉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자 KBO는 그동안 모아둔 131억원의 기금을 구단 운영자금으로 써버린 상황이었다.

히어로즈, 빌린 돈으로 가입금 120억원 내고 프로야구 입성 #선수 장사·뒷돈 거래로 야구단 편법운영하다 10년 만에 구속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젊은 사업가가 131억원의 가입금을 내고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자본금 5000만원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어떻게 프로야구 구단을 창단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사업가는 엄청난 자산가인 척하면서 가입비를 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또 구단 이름을 파는 네이밍 스폰서라는 신개념 경영으로 야구단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기업이었다. 회사 이름이 영어 명칭(센테니얼)이어서 외국계 창투사가 국내 프로야구단을 인수했다고 생각하는 이도 적잖았다.

이 사업가는 KBO와 계약이 임박하자 사업가 기질을 발휘한다. 가입금 131억원을 120억원으로 깎아달라는 돌발 제안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다급해진 KBO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8년 1월 30일, 돈 한 푼 내지 않고 프로야구계에 뛰어든 이 사업가는 야구단 창단 직후 구단 이름을 담배회사에 팔아넘긴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우리 히어로즈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자 이 사업가는 가입금 120억원을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분할납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어떻게 해서든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고 싶었던 KBO는 다시 이 요청도 받아들였다.

사업가는 첫 번째 가입금 납부기일인 2008년 6월 말까지 약속한 24억원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돈을 빌려 1차분을 납부하는 데 성공한다. 재미교포 사업가를 찾아가 구단 주식 40%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간신히 20억원을 투자받은 게 이 당시다.

그 이후에도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야구단은 굴러갔다. 스타와 유망주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2010년엔 해마다 100억원을 받기로 하고 구단 이름을 넥센타이어에 팔았다. 선수들을 트레이드할 때는 20억원을 받는다고 발표해놓고 뒤로는 30억원을 받았다. 이렇게 뒷돈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모두 131억5000만원. 5000만원을 들여 회사를 설립한 뒤 선수 장사와 차입금으로 120억의 가입금을 충당한 뒤에도 11억5000만원을 남겨 먹은 것이다. 매달 회삿돈으로 아파트 월 임대료 350만원을 낸 건 별도다. 유흥주점 주인에게 회삿돈 2억원을 빌려준 적도 있다. 이쯤 되면 ‘21세기 봉이 김선달’이다.

이 사업가의 이름은 이장석. 80억원 대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데이터와 통계를 중시하는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의 구단 운영과 비슷하다고 해서 한때 ‘빌리 장석’으로 불렸던 사업가의 말로다. KBO는 최근 이장석 구단주에 대해 영구실격 처분을 의결했다. 그런데 이 구단은 최근 키움증권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해마다 100억원을 받고 키움 히어로즈로 팀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다. ‘봉이 장석’의 신화는 옥중에서도 계속될까.

정제원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