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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학원 일요휴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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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교육과 인연이 깊다. 김대중·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교육 방향을 조언했다. 2007년 방한 땐 학생 100명을 모아 놓고 교육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재작년 사망하자 그가 생전에 한국 교육에 던진 화두들이 새삼 재조명됐다. 그중 이런 뼈아픈 지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2007년 얘기다.

이런 지적의 영향인 양 ‘쉼이 있는 교육’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다. 이듬해인 2008년 ‘학원 심야영업 제한’ ‘학원 휴일휴무제’ 법제화가 시도된다. 그러나 학원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서울·경기 등 5개 시·도에서만 심야영업이 제한됐을 뿐 휴일휴무제는 백지화됐다. 그 이후 10년간 교육감 선거나 대선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의 학원 휴일휴무제 도입 요구가 이어졌지만 매번 유야무야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그제 ‘학원 일요휴무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서울교육정책 백서를 내놓으면서다. “학생들이 일요일만이라도 온전히 쉬면서 신체적·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OECD의 지난해 ‘학생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안팎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주당 60시간을 넘는다고 답한 한국 학생이 23.2%로 OECD 평균(13.3%)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김영철 상명대 교수는 지난해 일반고 학생의 40%, 특목·자사고 학생의 51%가 일요일에도 학원에 가서 평균 4~5시간을 수강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학부모 상당수는 ‘일요일엔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소망한다. 지난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중학생 학부모의 71.3%, 고교생 학부모의 62.9%가 학원 일요휴무제 도입에 찬성했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조사에선 중·고생 78%가 “일주일에 하루는 공부 대신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 시대다. 어른들은 쉼 있는 삶을 외친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이다. 법으로라도 일요일엔 학원 문을 닫게 하자는 발상이 민망한 노릇이나 학생·학부모의 바람이라면 못할 일도 아니다. 조 교육감만으론 안 된다. 조례에 앞서 법제화가 먼저다. 교육부와 정치권이 함께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물론 공교육 정상화로 학원 수요를 줄이는 게 근본 처방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