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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려운 코스 만들자" 최경주가 목청 높이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16)

4개월 만에 필드에 복귀한 최경주가 4번 홀에서 힘차게 아이언샷을 하고 있는 모습. 최경주 선수는 이번 골프대회에서 남자 골프대회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업적을 만들었다. [사진 KPGA]

4개월 만에 필드에 복귀한 최경주가 4번 홀에서 힘차게 아이언샷을 하고 있는 모습. 최경주 선수는 이번 골프대회에서 남자 골프대회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업적을 만들었다. [사진 KPGA]

최근 경상남도 창원의 정산 CC에서 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남자골프 대회에서 만난 최경주 프로는 외모마저 멋지게 변해 있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3년 미국 오하이오 콜럼버스 뮤어필드에서 열린 프레지던트 컵 대회였다. 당시 최 프로는 미국 팀에 대항하는 인터내셔날 팀 부단장이었는데, 카리스마 빼고는 퉁퉁한 시골의 촌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본 그는 007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쿨하고 날씬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스스로 다이어트를 통해 몸 관리를 한 결과라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촌스러움 벗고 쿨한 배우 같은 모습으로 변신

살이 빠진 것은 몸 관리를 하던 중 갑상선 암을 발견해 조기 치료한 데 따른 것이지 암 때문은 아니라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그는 멋지게 변한 외모 말고 다른 면에선 여전히 한결같았다. 골프에 대한 열정과 한국 남자골프 발전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스포츠인으로서의 카리스마도 전해졌다.

이번 정산에서 열린 남자골프대회에서도 한국 골프를 한 단계 끌어 올린 조그만 업적을 올렸다. 카트에서 10야드 정도 필드 안에 설치하는 로핑(안전선) 방식을 밀어붙여 성사시킨 것인데, 이는 선수와 갤러리가 같이 호흡하고 반응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우리나라 골프대회는 골프장의 그린 키퍼와 경영자가 필사적으로 필드 안에 로프를 치는 것을 반대해왔다. 그냥 카트 도로 옆에 로프를 쳐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온 갤러리가 잔디를 밟지 못하게 했다. 2013년 스포츠마케팅회사인 스포티즌의 대표였던 나는 잭 니클라우스가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소유하고 있는 뮤어필드 CC에서 열린 프레지던트컵 대회를 참관했다. 로프가 페어웨이 근처까지 필드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쳐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뮤어필드 골프클럽의 모습. 잭니클라우스가 직접 설계하고 소유하고 있는 뮤어필드CC는 로프가 페어웨이 근처까지 필드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쳐져 있다. 이는 갤러리들이 필드 안까지 깊게 들어와 선수의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Russell Cheyne/Reuters]

뮤어필드 골프클럽의 모습. 잭니클라우스가 직접 설계하고 소유하고 있는 뮤어필드CC는 로프가 페어웨이 근처까지 필드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쳐져 있다. 이는 갤러리들이 필드 안까지 깊게 들어와 선수의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Russell Cheyne/Reuters]

4일간 20만명이 넘는 갤러리가 필드 안까지 가능한 한 깊게 들어와 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래야 오히려 선수들이 수많은 갤러리에 적응해 의식하지 않고 플레이를 할 수 있어 골프가 일반인의 사랑을 받게 됐다는 게 대회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페이 웨이를 넓게 개방하면 잔디도 크게 손상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대회운영을 할 때 이를 참고해 로핑 방법을 개선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만 다니던 보광그룹의 임원으로 돌아오면서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박연차 회장에게 로핑방식 개선 요청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자프로골프협회(KPGA) 사무국이 처음으로 정산 CC 측에 필드 안까지 들어오는 로핑 방식을 요청했으나 그린 키퍼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은 최 프로는 정산 CC의 오너 박연차 회장을 찾아가 “갤러리가 밟고 다녀 잔디가 죽으면 내가 고향 완도에 가서 잔디 떼장을 떼다가 복구하겠다”면서 재고해주도록 요청했다. 박 회장이 그 자리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나는 이를 듣고 최 프로와 같은 열정과 진정성이 있는 골퍼가 있어 한국의 골프, 특히 남자골프가 한 단계씩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 경주 인비테이셔널 대회만 해도 그렇다. 한국에서 프로 골퍼의 이름을 걸고 열리는 유일한 대회다.

최 프로는 2011년 자신이 예산을 대고 자기 이름을 넣은 남자대회를 열기로 공표한 이래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CJ그룹이 대회를 후원해주다가 그만둔 2016년엔 예산이 확보되지 않자 최 프로는 상금 1억원을 걸고 대회의 명맥을 이었다. 이런 사연이 신문에 실리자 현대해상 측이 감동해 이 대회를 후원하기로 했다는 게 KPGA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 업계 관계자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이 평소 골프대회를 연다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여자골프대회보다는 남자 골프대회를 지원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최 프로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지인을 통해 직접 정 회장에게 대회후원을 부탁해 대회 스폰서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정산 CC에서 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골프대회 마지막 날 18번 홀 그린에서 최프로에게서 한국 남자프로 골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민국홍]

지난 4일 정산 CC에서 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골프대회 마지막 날 18번 홀 그린에서 최프로에게서 한국 남자프로 골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민국홍]

한국 남자골퍼, 아이언 기량 더 갈고닦아야

최 프로는 조만간 남자 프로골프대회도 여자골프대회 이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남자프로골퍼는  더 이상 체격이나 체력은 문제가 아니고 장타도 잘 날린다고 한다. 스윙 맵시가 뛰어나다. 그러나 아이언 기량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투어는 대개 7400~7500야드의 전장을 사용하는데, 한국 투어는 7000야드를 넘을 뿐이라 선수의 기량이 향상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제대회는 파4가 대개 490~ 500야드로, 보통 드라이버를 친 다음 세컨 샷으로 6, 7번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 선수는 유틸리티를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람만 불면 언더파를 못 친다고 한다.

최 프로는 한국투어도 앞으로 7400야드 이상 나오는 골프장에서 코스 세팅을 어렵게 해야 선수의 기량 향상이 이뤄져 세계적인 스타급 선수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 프로에 따르면 한국에 이런 조건을 갖춘 골프장이 네 군데가 있다고 한다. 서울 부근의 뉴 코리아 CC와 스카이 72 골프장의 오션 코스, 통도사 CC의 사우스 코스, 정산 CC 등이다. 그가 정산CC를 대회 코스로 고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최 프로 같은 선수가 1명만 더 있어도 한국 남자골프의 발전이 성큼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기업의 오너나 CEO 가운데 정몽윤 회장 같이 골프 애정이 깊은 분이 적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최 프로의 지적처럼 한국 남자 프로골퍼는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고 협회 측은 정 회장 같은 스폰서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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