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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로, 안무 따로 … 빛바랜 ‘마타 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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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  [사진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 [사진 국립발레단]

도전 정신만 홀로 빛난 무대였다.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는 산만한 구성과 음악ㆍ안무의 부조화로 아쉬움을 남겼다.

국립발레단 올해 유일한 새 작품 #1차대전 때 전설적 무용수 다뤄 #캐릭터에만 집중, 음악도 겉돌아

 국립발레단의 2018년 유일한 신작인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무용수 마타 하리(1876∼1917)의 실제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1993년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주인공으로 초연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작품을 당시 안무가였던 레나토 자넬라가 25년 만에 새로 안무해 선보였다.

 자넬라는 지난달 18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남자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여성 해방을 외치는 삶을 산 마타 하리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강 예술감독은 지난 2월 국립발레단 신년간담회에서부터 “기존 ‘마타 하리’와는 완전히 다른 신작으로, 라이선스도 국립발레단이 갖는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마타 하리’는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고 평했다. 너무나 복잡한 마타 하리의 삶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겨놓으려다 빚어진 참사였다. 마타 하리는 남편 매클라우드를 비롯해 러시아 장교 마슬로프, 은행가 루소, 극장장이자 에이전트 아스트뤽, 변호사 클뤼네, 프랑스 정보국 대위 라두, 독일군 정보장교 칼레 등 무수한 남성과 사랑하고 교류를 하지만 결국엔 배신을 당한다. 마타 하리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주려는 듯 마타 하리 역을 맡은 무용수(김지영ㆍ박슬기ㆍ신승원)도 작품 속에서 혹사당했다. 공연 시간 내내 무려 11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무대를 끌어갔지만, 관객들은 상대 남성이 누구인지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10번을 그대로 갖다 쓴 음악도 안무와 겉돌았다. “이야기와 안무에 맞춰 음악을 고른 게 아니라 음악을 먼저 선택한 뒤 안무와 이야기를 덧입혔다”는 안무가 자넬라의 작업 방식 때문이었을까. 음악이 작품의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미흡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신작을 창작한 시도 자체의 의미가 크다는 의견도 있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해외에서 오래전 검증받은 작품이 아닌 신작 창작에 도전하는 국립발레단의 실험 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시도가 번번이 강 예술감독이 몸담았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4년 강 예술감독 부임 이후 국립발레단이 내놓은 신작 장편은 모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관련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2015)는 1969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초연한 작품이며, ‘잠자는 숲속의 미녀’(2016)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예술감독 출신인 마르시아 하이데 버전을 따랐고, ‘안나 카레니나’(2017)의 안무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상임 안무가를 지낸 크리스티안 슈푹이 맡았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국립발레단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넘어선 다양한 세계 최정상급 안무가를 초빙해 안무의 수준과 영역을 다채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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