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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떠난 지 두 달…‘개척 곰’ KM53은 잘 살고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반달가슴곰 KM53.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KM53.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오삼이는 찾았어요? 산 반대편으로 돌아서 다시 신호를 잡아 봅시다.

경북 김천시 수도산자연휴양림. 밤 8시가 넘었는데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조금 전 반달가슴곰 KM53의 신호음이 뚝 끊기면서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근무를 마치고 쉬고 있던 직원들까지 총출동했다. 이들은 안테나를 들고 산 주변을 차로 돌면서 KM53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강경훈 연구원은 “KM53에 고유 주파수를 가진 발신기를 달아놔서 안테나와 수신기를 통해 곰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서도 “산과 계곡에 막혀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서 KM53을 찾은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두 시간 넘는 수색 끝에 주유소 인근에서 안테나를 산 쪽으로 향하자 미약한 신호음이 잡혔다. 전담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 번 탈출 끝에 수도산에 방사…가야산까지 이동

전담팀이 안테나를 들고 반달가슴곰 KM53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전담팀이 안테나를 들고 반달가슴곰 KM53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을 복원 중인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이 수도산까지 온 건 KM53 때문이다.

KM은 ‘Korea Male(한국산 수컷 곰)’의 약자로, 53은 곰의 관리번호를 뜻한다.

환경부는 지리산에서 세 번이나 탈출해 수도산으로 이동했던 반달가슴곰 KM53을 지난 8월 27일 수도산에 풀어줬다. 반달가슴곰을 국립공원 밖으로 방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KM53이 ‘개척곰’이라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KM53이 수도산에 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전담팀은 교대로 24시간 KM53의 위치를 추적하고 서식지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등 KM53이 새 보금자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수도산자연휴양림에는 종복원기술원 직원 6명이 머무는 숙소가 있다. 수도산에 방사한 KM53을 추적하는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방 안에 들어가자 한쪽 벽에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KM53의 이동 경로가 시간대별로 표시돼 있었다. 전담팀에 따르면, KM53은 방사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가야산 정상까지 두 차례나 이동하는 등 행동반경을 점차 넓히고 있다.

문광선 종복원기술원 남부복원센터장은 “KM53은 방사 이후 수도지맥으로 이어져 있는 가야산까지 갔다가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오는 이동 패턴을 보인다”며 “하루에 5~6㎞씩 이동하는 것으로 봐서 건강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체 복원에서 서식지 복원으로 

지리산 반달가슴곰.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반달가슴곰.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에서만 복원돼 온 반달가슴곰이 국립공원을 벗어나 서식지를 넓히게 된 건 KM53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KM53은 2015년 1월 기술원에서 태어나 그해 10월 지리산에 방사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지리산에서 탈출해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1317m)에서 잡혔다. 두 달 뒤 다시 지리산에 풀어줬는데 또 탈출하다 포획됐다.

지난 5월 5일에는 수도산으로 세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다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로 달리던 고속버스 범퍼에 부딪혀 왼쪽 앞다리가 으스러졌다.

교통사고로 앞다리가 부러진 반달가슴곰 KM53.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교통사고로 앞다리가 부러진 반달가슴곰 KM53.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후 종복원기술원으로 옮겨진 KM53은 왼쪽 앞다리 복합골절 수술을 받았고 회복에 전념해 왔다. 환경부는 종복원기술원, 지자체 관계자들과 논의 끝에 KM53을 수도산에 풀어주기로 했다.

반달가슴곰 56마리 복원에 성공한 종복원기술원이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는 데에서 벗어나 서식지 복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문 센터장은 “KM53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수도산으로 보내줄 거냐, 아니면 안전이라는 이유로 지리산에 머물게 할 거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수도산에 재방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곰과 인간 공존할 수 있는 안전 대책 마련해야”

수도산 일대에 반달가슴곰 주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권필 기자

수도산 일대에 반달가슴곰 주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권필 기자

전담팀이 가장 걱정하는 건 주민과의 충돌이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특히, 단풍철을 맞아 등산객들이 많아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충돌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19일에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복원 중인 2년생 반달가슴곰이 등산객들에게 접근하면서 포획 조치되기도 했다.

문 센터장은 “곰에서 먹이를 주거나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어린 곰이 사람을 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근처에 어미 곰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담팀은 KM53을 추적하는 것과 별개로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설명회를 열고, 반달곰을 쫓는 피리를 지급하기도 했다. 농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기울타리를 설치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반달가슴곰을 환영하면서도 과수원, 양봉 피해 등을 우려했다. 수도산 일대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멧돼지나 노루 같은 야생동물들이 나무를 갉아먹고 가는 바람에 올해도 세 그루를 베었다”며 “반달가슴곰 보호도 좋지만 당장 과수원 피해를 막으려면 올무를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둘 모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는 “외국에서는 야생곰 인근 주민들에게 곰 스프레이를 지급하지만, 한국에서는 곰 스프레이가 총기법 관리 대상이어서 사실상 소지가 불가능하다”며 “곰 서식지 주변의 올무를 수거하는 동시에 산에서 일하는 주민들을 위한 안전대책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천=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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