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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기술자 아름다운 시너지, 튀는 플랫폼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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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14면

‘아름다운 뉴스’ 세션에 참가한 ‘맥락(麥樂)’팀이 전국 8도 수제 맥주 브루어리 현황을 분석한 데이터를 영상으로 만들고, 이를 국악과 전통 춤, 현대무용으로 형상화한 무대를 선보였다. [신인섭 기자]

‘아름다운 뉴스’ 세션에 참가한 ‘맥락(麥樂)’팀이 전국 8도 수제 맥주 브루어리 현황을 분석한 데이터를 영상으로 만들고, 이를 국악과 전통 춤, 현대무용으로 형상화한 무대를 선보였다. [신인섭 기자]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 공작의 입을 빌어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만약 그가 4차 산업혁명이 발현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움과 기술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라고.

콘텐츠진흥원 ‘시연회’ 가보니 #차창이 순식간에 스크린이 되고 #빗소리·새소리에 따라 영상 변화 #인디 밴드와 매칭한 블록체인 팀 #팬들 관심에 보상하는 시스템 선봬 #미국 톱4 AI 스타트업에 뽑힌 업체 #아티스트들 덕분에 상상력 얻어 #“기술+예술 2차 지식혁명 진행 중 #말도 안되는 것 연결해 새 것 창조”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1일 서울 홍릉 콘텐츠문화광장에서 개최한 ‘11011101 콘텐츠 임팩트 2018’은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자리였다. 지난해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두 번째로 열린 문화기술 전문인력 양성사업이다. ‘11011101’은 11월 1일 오전 11시 1분에 시작한다는 뜻과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상과의 접속이라는 함의를 동시에 품고 있다. 무엇보다 잠재력 있는 기술이 연구실 책상 위를 벗어나 KOCCA가 보유한 아티스트 네트워킹을 통해 무대 위에서 대중의 눈높이로 거듭났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다.

올해는 판을 더 키웠다. 콘텐트 플랫폼으로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공간 활용방안을 짚어본 ‘스스로 가는 자동차와 당신의 시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아티스트가 함께 뉴스를 만들어 본 ‘아름다운 뉴스’,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독립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보다 단단한 연결고리를 찾는 ‘인디 아티스트를 위한 블록체인’의 3개 분야다. 지난 7~8월 선정된 총 17개 프로젝트 팀들이 그동안 고심해온 결과물들을 이날 공개했다.

도스토옙스키 ‘아름다움이 세상 구원’ 꿈

‘Team A’의 ‘서울, 도시 리듬’ 전시장 모습. [신인섭 기자]

‘Team A’의 ‘서울, 도시 리듬’ 전시장 모습. [신인섭 기자]

행사장인 스테이지66의 객석을 ‘ㄷ’자로 둘러싼 3면 스크린 주위로 미래지향적인 형광색 네온이 계속 번쩍거렸다. 이 빛 사이로 ‘자율 자동차’ 세션의 첫 번째 주인공인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얼굴 표정에서 7가지 감정을, 목소리에서 4가지 감정을 추출하는 감정 인식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차량에 탑재된 인공 지능과 고교생 아들의 대화를 유머러스한 드라마 에피소드로 선보였는데, 여기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음악을 맡았던 남혜승 감독을 비롯한 작가·연출·후반작업 등 영상 전문팀의 도움이 컸다. “자율 자동차 세션의 경우 기술적 이해가 쉽지 않아 스타트업 회사를 먼저 선정하고 해당 기술에 대한 스터디를 한 뒤, 여기에 맞는 아티스트를 매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는 것이 프로젝트를 총괄진행한 서희선 인력양성팀 부장의 설명이다.

‘자율 자동차’ 세션에 참가한 ‘브이터치’의 김석중 대표가 손짓만으로 차량 내부 장치를 제어하는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KOCCA]

‘자율 자동차’ 세션에 참가한 ‘브이터치’의 김석중 대표가 손짓만으로 차량 내부 장치를 제어하는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KOCCA]

정면에 있는 1대의 카메라가 사람의 시선과 손가락의 방향을 인식해 손이 닿지 않아도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브이터치’의 김석중 대표는 EBS의 협조를 얻어 아이들의 상상력 넘치는 그림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했다. 그는 차창이 순식간에 스크린이 되고 뒷좌석에 앉아 손짓만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음악이 재생되는 장면을 직접 시연, “자동차는 이제 타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자신의 말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차량이 주행하는 도로 양쪽 건물에 증강현실을 구현해 슈팅 게임으로 활용한 모듈 버전은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서울과 쾰른에서 게임 디자이너이자 개발자로 활동 중인 김영주씨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서울대 음악오디오연구실 출신들이 설립한 오디오 인공지능 스타트업 ‘코클리어닷에이아이’는 ‘자동차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곳. 미국전기전자공학회가 주최한 환경음분석대회(IEEE DCASE)에서 2017, 2018년 연속으로 우승했고, 미국 NVIDIA 선정 2018 자동화 시스템 분야 톱4 AI스타트업으로 선정된 회사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의 신범호,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 등이 뭉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그룹 ‘무토’와의 협업을 통해 빗소리나 새소리에 따라 차창 스크린 영상이 바뀌는 모습을 3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tangible data’의 ‘비공식 휴머니즘-난민을 보는 두 시선’ 전시물, [신인섭 기자]

‘tangible data’의 ‘비공식 휴머니즘-난민을 보는 두 시선’ 전시물, [신인섭 기자]

서 부장은 “기술 개발자들은 야근과 새벽 퇴근이 예사일 정도로 대부분 과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시간을 쓰기가 쉽지 않다”며 “기술이라는 우물 속에서 기술자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를 KOCCA가 가진 콘텐트와 아티스트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들 앞에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듀싱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 프로젝트의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김석중 브이터치 대표는 “아티스트들 덕분에 새로운 상상력을 갖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세션 사이사이마다 협업에 나선 아티스트들의 공연 무대와 전문가 토크가 이어져 재미를 더했다. 여러가지문제연구소 김정운 소장은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와 함께 ‘양손잡이형 인재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걸쭉한 입담을 뽐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말”이라고 운을 뗀 김 소장은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과학과 기술이 만난 ‘1차 지식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며, 1919년 바우하우스 운동으로 시작된 기술과 예술의 만남인 ‘2차 지식혁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에서 ‘창조’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의 ‘색다른 연결’을 응원했다.

기술자들 얘기를 아티스트 눈으로 풀어내

‘BBREAKA+Green Town’의 ‘스윗홈’ 설치물을 관람객이 둘러 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BBREAKA+Green Town’의 ‘스윗홈’ 설치물을 관람객이 둘러 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두 번째 세션인 ‘아름다운 뉴스’는 데이터분석가와 아티스트를 동시에 선정한 뒤 서로에 대한 연구 끝에 한 달 뒤 팀을 매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년 여성·서울 인구 동향·부동산 투기·한국의 수제맥주·난민 등의 주제를 8개팀이 프레젠테이션과 전시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소다비’의 이도민·송상은 작가는 영상 ‘난민, 그들도 사람입니다’를 제작했다. 소다비는 미국 LA를 중심으로 한인사회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시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단체. 이들은 보호해 줄 곳을 찾아 헤매는 망명 신청자들의 이동을 지구본 위에 시각화하고 군중 시뮬레이션으로 난민의 규모를 표현했다. 할리우드에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쓰는 기법이다. 드림웍스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는 이 작가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난민이 되는 건 전쟁·종교적 박해·굶주림 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팀 A’라는 이름으로 모인 데이터 분석가와 아티스트들은 ‘서울, 도시의 리듬’이라는 주제로 데이터 아트 작품을 완성해 주목받았다. KT의 통신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울시가 공개한 일주일치 생활인구 빅데이터를 취합, 20대 젊은층·60~70대 노년층·등록 외국인의 이동 양태를 한눈에 비교해 보여주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인디 아티스트를 위한 블록체인’ 세션은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뜨거운 관심 덕분에 마지막 코너임에도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클래식 연주자나 뮤지컬 배우나 사실상 ‘인디 아티스트’로서, 작은 시장에서 무대와 팬덤을 이어가야 하는 고민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서 부장은 “프레인이나 잔다리페스타, 인디뮤직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처럼 아티스트를 보유한 기관을 먼저 섭외하고 이들의 자료를 중심으로 블록체인 팀을 매칭했다”고 말했다. 다섯 팀들은 팬들의 관심과 행동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투명하게 숫자로 남기고 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공통적으로 선보였다.

기술 스타트업 ‘엔퍼’의 김재룡 대표의 경우 크리에이터들의 협동조합인 ‘크리에이티브 워커스’와 손잡고 뮤지컬 배우 이지혜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 인 블록’을 선보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한 자신만의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팬과 아티스트의 소식을 널리 퍼뜨리는 팬으로 세분화하고, 이들에게 분배되는 이른바 ‘지혜 코인’을 총 분배량 대비 나의 기여도로 세심하게 수치화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포스텍 출신의 개발자와 프로듀서·뮤지션·공연기획자로 구성된 ‘스테이지랩스’는 홍대 앞 인디 음악인들의 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를 중심으로 인디 뮤지션들이 세계로의 등용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십시일반 시스템을 선보였다. 또 서울대·중앙대·서강대 블록체인 학회장들로 구성된 연합팀 ‘스트릿라이트’는 프레인 TPC 소속 배우 오정세씨의 팬덤을 이용한 팬들과 아티스트 윈윈 전략을 선보였다.

마지막 무대를 노래로 장식한 이지혜 배우는 “솔직히 기술에 관해선 들어도 이해가 힘든데, 내가 부르는 고전적인 노래가 가장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평소 안 듣던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형모·이경희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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